파평윤씨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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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 재실
Ritual House of the Papyeong Yun Clan
파평윤씨 재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파평윤씨 재실
영문명칭 Ritual House of the Papyeong Yun Clan
한자 坡平尹氏 齋室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121번지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299호
지정(등록)일 1988년 8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5동/564㎡
웹사이트 파평윤씨 재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파평 윤씨 재실은 윤창세(1543-1593, 尹昌世)가 아버지 윤돈(尹暾)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재실은 묘지기가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일명 병사(丙舍)라고 한다. 이곳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수호사(守護舍)와 덕포공(德浦公) 윤진(搢)의 재실을 포함하여 한말에 세운 영사당(永思堂), 성경재(誠敬齋), 관리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호사는 앞면 7칸, 옆면 2칸의 납도리집*으로 네모난 기둥을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사당은 5칸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팔작지붕 건물이다. 덕포공 재실은 ㄱ자형 구조로 네모난 기둥을 사용한 맞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조선 후기 재실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 가장 간단한 목조주택 구조

영문

Ritual House of the Papyeong Yun Clan

This ritual house complex was first established in 1574 by Yun Chang-se (1543-1593), a civil official, to maintain the tomb of his father, Yun D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Yun Chang-se formed a civilian army and fought the invaders but died due to an infectious disease in 1593. He remained widely known for his filial devotion to his parents.

The complex underwent various changes over the centuries and currently includes a tomb keeper’s house, a ritual house (Chungcheongnam-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359) for honoring Yun Jin (1631-1698), and two other buildings.

The tomb keeper’s house was built in the 1630s by Yun Sun-geo (1596-1668), the grandson of Yun Chang-se, to protect the tombs of his ancestors. Next to the tomb keeper’s house, was another building where Yun Sun-geo’s son, Yun Jin, lived during his lifetime. After Yun Jin’s death, the building was turned into the ritual house honoring him. The other two buildings, named Yeongsadang and Seonggyeongjae, were added around the turn of the 20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인 윤창세(1543-1593)가 아버지 윤돈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1574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창세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1593년 전염병으로 인해 죽었으며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곳은 수백 년간 여러 변화를 거쳤다. 지금은 수호사와 윤진(1631-1698)의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9호) 등이 있다.

수호사는 1630년대에 윤창세의 손자인 윤순거(1596-1668)가 선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것이다. 수호사 옆에는 윤순거의 아들인 윤진이 생전에 거주했던 건물이 있다. 윤진 사후에 이 건물은 윤진을 위한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영사당과 성경재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