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의 묘
성삼문의 묘 Tomb of Seong Sam-m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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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성삼문의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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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Seong Sam-mun |
한자 | 成三問의 墓 |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58번지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81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5월 17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0 |
수량/면적 | 1기/877㎡ |
웹사이트 | 성삼문의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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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성삼문 묘는 조선 초기의 문신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묘이다.
성삼문은 1438년(세종 20)에 식년*문과에 정과로,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가 되어서는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독(禮記大文諺讀)』을 편찬하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정음청(正音廳)에서 정인지 등과 한글 창제를 위해 명나라 언어학자 황찬에게 13차례나 오가며 음운을 연구하여 한글 창제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455년(세조 원년) 4월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왕의 국문(鞠問)**을 받아 사망하였다. 한강 변현 노량진에서 거열(車裂)***형을 당한 후 그의 시신은 조선 8도에 매장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쪽 다리가 이곳에 묻혀서 일지총(一肢塚)이라고 불리고 있다.
묘의 크기는 둘레 30m, 지름 13m이며, 주변에는 최근에 제작하여 배치한 상석****과 문인석, 돌기둥 등이 있다. 무덤 입구에는 하마비와 묘비가 있으며, 무덤 앞에는 묘표가 있다.
성삼문과 논산 지역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절개와 지조를 상징으로 하는 성삼문의 묘가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대에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 3년에 한 번씩 치르는 과거
- 임금의 명령으로 중죄인을 신문하던 일
- 팔다리를 각각 다른 수레에 묶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끌어서 찢어 죽임
-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영문
Tomb of Seong Sam-mun
This is the tom of Seong Sam-mun (1418-1456), a military official and scholar of the early Joseon period (1392-1910).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38 and, as a member of the royal research institute called the Hall of Worthies, he contributed to the invention of the Korean writing system Hangeul. When in 1455 King Danjong's (r. 1452-1455) throne was usurped by his uncle King Sejo (r. 1455-1468), Seong together with others opposing the new king plotted to kill King Sejo and return the throne to King Danjong. However, their plan was exposed, and as a result, Seong was tortured and executed. The six officials, including Seong, who were executed by King Sejo are called the Six Martyred Ministers. To exemplify the punishment for treason, King Sejo ordered the bodies of those ministers to be dismembered and scattered to different places all over the country. As a result, one of Seong's legs was buried in this location and the tomb is now called Iljichong (一肢塚).
In front of the tomb mound, which measures 30 m in circumference and 13 m in diameter, a stone table, two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a stone pillar have been recently built.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성삼문(1418-1456)의 묘이다.
성삼문은 1438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집현전의 일원으로 한글 창제에 기여하였다.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반대한 이들과 함께 세조(재위 1455-1468)를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모의는 발각되었고 성삼문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처형당했다. 성삼문을 비롯하여 이때 처형된 여섯명의 충신들을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반역에 대한 처벌의 본보기를 보이고자 세조는 사육신의 시신을 전국 각지로 나누어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한쪽 다리가 이곳에 묻혀서 이 무덤을 일지총(一肢塚)이라고도 한다.
봉분 앞에 있는 상석, 문인석 1쌍, 돌기둥 1쌍은 최근에 만든 것이다. 봉분의 크기는 둘레 30m, 지름 13m이다.
- 금남 문절사 참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