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태사 철확
개태사 철확 Iron Cauldron of Gaetaesa Te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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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개태사 철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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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Iron Cauldron of Gaetaesa Temple |
한자 | 開泰寺 鐵鑊 |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08 |
지정(등록) 종목 | 시도민속문화재 제1호 |
지정(등록)일 | 1973년 12월 24일 |
분류 | 유물/불교공예/공양구/공양구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개 |
웹사이트 | 개태사 철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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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개태사 철확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개국사찰로서 개태사를 세웠을 때 부엌에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무쇠솥이다. 고려 후기에 개태사가 폐허가 되는 바람에 벌판에 방치되었는데 1887년고종 24 대홍수로 약 4km 정도 하류로 떠내려가면서 일제 때 경성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그 후로 마을에 흉년이 들자 연산 사람들이 총독부에 진정서를 내는 등 솥을 찾기 위해 노력해 마침내 찾아와 연산공원에 전시하다가 198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 솥은 가뭄 때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내리는가 하면, 수해를 막기도 하고 풍년이 들게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솥은 직경 289cm, 높이 96cm, 둘레 910cm로 테두리 없는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이다. 두께는 약 3㎝이고, 밑바닥의 직경은 약 90cm로 둥근 굽이 있어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만들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장을 끓이던 솥이라는 기록이 있고, 1944년에는 고철로 쓰기 위해 부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 벼락이 쳐서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문
Iron Cauldron of Gaetaesa Temple
This huge cauldron is said to have been used at Gaetaesa Temple’s kitchen, after Taejo, the founding king of Goryeo dynasty (918-1392), founded the temple in 940. However, as the temple fell into ruin at the end of the Goryeo period, this cauldron was abandoned at the temple’s former site. In 1887, it was carried away by a great flood and was found nearby a stream about 4 km awa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took this cauldron to presented it at an exhibition in Seoul. The local residents of Yeonsan tried to recover the cauldron by submitting a petition to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later at some time, the cauldron came back to be exhibited at Yeonsan Park. In 1981, the cauldron was relocated to today’s Gaetaesa Temple.
According to a legend, the Japanese tried to break this cauldron to utilize it for military purposes, but failed as there were thunder and lightening all of a sudden. Another legend says that bringing this cauldron to drought areas would bring rainfalls.
It measures 289 cm in diameter, 96 cm in height, 910 cm in circumference, and 3 cm in thickness.
영문 해설 내용
이 커다란 무쇠솥은 고려 태조가 940년에 개태사를 창건한 후 사찰의 부엌에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려 말 사찰이 폐허가 되면서 사찰 터에 방치되었다. 1887년에는 대홍수로 떠내려가 4km 정도 떨어진 냇가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이 솥을 가져가 경성박람회에서 전시하였다. 연산 사람들이 솥을 찾기 위해 총독부에 진정서를 내는 등 노력하였고, 이후 솥은 돌아와 연산공원에 전시되었다. 1981년에 지금의 개태사로 옮겨왔다.
전설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전쟁물자로 쓰기 위해 이 솥을 부수려고 했으나, 갑자기 천둥벼락이 쳐서 실패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가뭄이 든 곳에 이 솥을 가져가면 비가 온다고 한다.
솥은 직경 289cm, 높이 96cm, 둘레 910cm, 두께 3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