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수정재
영덕 수정재 Sujeongjae Ritual House, Yeongd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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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덕 수정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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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ujeongjae Ritual House, Yeongdeok |
한자 | 盈德 水晶齋 |
주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구미2길 35-26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210호 |
지정(등록)일 | 1988년 9월 23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영덕 수정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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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수정재는 평산 신씨 입향조인 신희(申禧), 조선 중종 때 한성판관을 지낸 현손* 신종부(申從簿),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사헌부감찰의 벼슬을 받은 신규년(申虯年) 등을 모시기 위해 숙종 28년(1702)에 ‘세덕사(世德祠)’란 이름으로 세워졌다. 그 후 고종 원년(1864)에 서원 훼철령(毁撤令)**으로 철폐되어 묘 아래 있는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1808년, 1879년, 1963년의 3차에 걸친 보수가 있었다. 마룻도리***에 적혀 있는 “숭정기원후 기묘…[崇禎紀元後 己卯…]”라는 글귀는 2차 보수 때 쓴 것이다.
정면 5칸, 옆면 2칸의 책을 보관하던 서사(書舍)를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건물이 있고, 정면으로 대문간이 자리하여 ‘ㅁ’자형으로 보이지만, 서사 부분이 독립되어 있어 ‘튼 입구자’(匚) 모양의 평면이다. 외형상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안동 지역의 재사와 비슷하나, 내부 평면은 전혀 다른 구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후기 영덕 지역의 재사 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현손: 손자의 손자.
- 훼철령: 조선후기 제26대 고종 연간에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고 내린 명령.
- 마룻도리: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도리는 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영문
Sujeongjae Ritual House, Yeongdeok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maintenance of the tombs of the Pyeongsan Sin Clan.
This ritual house was originally established as a shrine named Sedeoksa in 1702 and housed the spirit tablets of Sin Hui, a scholar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his descendants Sin Jong-bu and Sin Gyu-nyeon. Sin Hui was the first person from the Pyeongsan Sin Clan to settle in the Yeongdeok area. The shrine was closed in 1864,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and since then it has been used as a ritual house affiliated to the tomb of Sin Hui located nearby. Its buildings underwent major repairs in 1808, 1879, and 1963.
The ritual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t the front and a main building. The gate quarters has a wing on its either side. The two buildings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at the center.
영문 해설 내용
평산신씨 가문의 묘소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실이다.
이 재실은 원래 1702년 세덕사라는 사당으로 세워졌으며, 조선 전기의 학자인 신희와 그의 후손 신종부, 신규년의 위패를 모셨다. 신희는 평산신씨 영덕 입향조이다. 1864년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으며, 이후로는 신희 묘하의 재사로 사용되고 있다. 1808년, 1879년, 1963년 세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
대문채와 본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문채 양쪽에 익사를 두었다. 두 건물은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