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동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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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동산정
Dongsanjeong Pavilion, Haman
대표명칭 함안 동산정
영문명칭 Dongsanjeong Pavilion, Haman
한자 咸安 東山亭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441호
지정(등록)일 2008년 2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함안 동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산정은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호성(李好誠)이 지은 정자이다. 이호성은 거제현감·경상좌도병마절제사로 있으면서 성을 쌓아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다. 또한 20여 년간 여진정벌에 참여하여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렸다. 세종은 그에게 무(武: 엄하고 굳세며), 용(勇: 결단력이 과감하고), 청(淸: 청렴결백하며), 개(介: 사리가 곧고 바르다)의 휘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1467년(세조 13)에 죽으니 시호는 정무(靖武)이다.

이호성은 김천 출신으로 함안은 처가가 있는 곳이다. 1459년경에 동지산 기슭의 함안천 절벽 위에 정자를 지었다. 그의 손자 이희조(李希祖)가 ‘동산정’이라 하였다. 현재 모습은 1935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동산정은 출입문인 소원문(溯源門)과 4칸의 정자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에는 2칸의 온돌방이 있고, 양쪽에 마루가 1칸씩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의 정자 건축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함안 무진정에서도 보인다. 동산정은 일제강점기 정자 건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고, 영·호남의 정자 문화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문

Dongsanjeong Pavilion, Haman

This pavilion was originally built in 1459 by Yi Ho-seong (1397-1467, pen name: Dongsan), a military official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orn in Gimcheon, Yi built a fortress to defend the region from Japanese pirates while serving as the county magistrate of Geojedo Island and the deputy provincial naval commander of Gyeongsang-do Province. He was also in charge of defending the country’s northern territory for 20 years, and his thorough understanding of geography prevented him from making mistakes. At that time, he was nicknamed the “flying general” for his speed.

Haman is the hometown of Yi’s wife. Yi’s grandson Yi Hui-jo named this pavilion “Dongsanjeong” after his grandfather’s pen name.

The current pavilion was reconstructed in 1935. It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ain quarters, and auxiliary walls. The main quarters has an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center and a wooden-floored porch on each side, which is a layout commonly seen in pavilions in the Jeolla-do and western Gyeongsangnam-do Provinces.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1459년경에 조선 전기의 무신인 이호성이 지었다.

이호성은 김천 출신으로 거제현감·경상도병마절제사로 있으면서 성을 쌓아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다. 또한 20여 년간 북방을 수비하였는데, 지리를 잘 알아 실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 나는 듯 빠르다는 뜻으로 ‘비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함안은 그의 처가가 있는 곳이며, 정자 이름은 그의 손자 이희조가 이호성의 호 동산에서 따서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93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정자는 대문채, 본채, 부속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의 정자 건축에서 주로 보이는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