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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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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 신도비
Stele of Kim Im
김임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임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Kim Im
한자 金銋 神道碑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363호
지정(등록)일 1998년 12월 29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31㎡
웹사이트 김임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임선생신도비는 조선시대 문신 김임(金銋)의 묘 앞에 그의 삶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김임의 정확한 출생과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종 때의 유학자로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강령현감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김임은 1513년(중종 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그의 아들김수문(金秀文, 1504-1568)은 제주목사와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낸 무신으로 왜구와 오랑캐의 침략을 막는 공을 세웠다.

신도비의 받침은 거북 모양이며 비의 머리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이다. 김수문이 소세양(蘇世讓)에게 비문을 받아 1561년(명종 16)에 신도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김임의 행적이, 뒷면에는 독특하게도 고령 김씨 족보가 새겨져 있다. 김임은 노성에 살면서 중종 때 진사로서 호조판서를 증직(贈職)*받았는데, 만석꾼 부자로 인근 30리가 모두 그의 소유지라서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 국가에 공이 있는 인물이 죽기 전이나 죽은 후에 품계나 벼슬을 높게 받는 일

영문

Stele of Kim Im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16세기의 유학자인 김임의 생애를 기록한 비이다.

김임은 논산 출신으로 인근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한 만석꾼 부자였다.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고,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이 비는 아들인 김수문(1504-1568)이 제주 목사와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며 왜구와 오랑캐의 침략을 막은 공을 세운 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561년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문신인 소세양(1486-1562)이 지었다. 비의 앞면에는 김임의 행적이, 뒷면에는 고령김씨 족보가 새겨져 있다.

신도비의 받침은 거북 모양이며 머릿돌에는 두 마리 용과 여의주가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