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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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두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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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정제두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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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齊斗 墓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남로769번길 52 |
지정(등록) 종목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6호 |
지정(등록)일 | 2007.02.26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소유자 | 정시종 |
수량/면적 | 3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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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하곡(霞谷) 정제두(1649~1736)는 조선 영조 대의 학자로 18세기 초 강화도로 옮겨 살면서 양명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써 ‘강화학파’라 불리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다. 현종 9년(1668) 별시문과 초시에 급제했으나 정국의 혼란을 통탄하며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처음에는 주자학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지식과 행동의 통일을 주장하는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웠다. 문집으로는 『하곡문집(霞谷文集)』등이 있다. 묘비는 순조 3년(1803)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신대우가 짓고 서영보가 썼으며, 묘 앞에는 정제두의 아버지인 정상징과 그의 어머니인 한산 이씨의 합장묘가 있다.
영문용 원고
조선 후기의 학자인 정제두(1649~1736)의 묘소이다. 정제두는 본래 서울 출신으로, 몇 차례 과거시험에 실패한 뒤 1672년부터는 과거공부를 그만두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709년 강화도로 옮겨살면서, 양명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써 ‘강화학파’라 불리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다.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묘비, 장명등,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비는 1803년에 건립되었다. 묘 앞에는 정제두의 부모님의 합장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