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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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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2월 3일 (화) 09:30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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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사지 당간지주
Flagpole Supports at Beopsusa Temple Site
법수사지 당간지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법수사지 당간지주
영문명칭 Flagpole Supports at Beopsusa Temple Site
한자 法水寺址 幢竿支柱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316번지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87호
지정(등록)일 1975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당간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법수사지 당간지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당간지주 세부 명칭

해설문

국문

절에서 법회와 같은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걸어두던 깃발을 ‘당’, 이를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이 설 수 있게 양 옆에서 지탱해주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법수사는 통일신라 애장왕대(800~809년) 창건된 절로, 조선시대 기록인 『경산지(京山志)』에 따르면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을 갖춘 웅장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삼층석탑과 돌로 된 축대, 당간지주만이 절터에 남아있다.

현재 당간지주는 당간을 아래쪽에서 받쳐주는 간대석과 함께 전하는데, 간대석에만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을 뿐 지주는 장식없이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보통 당간지주는 사찰입구에 세우기 때문에 현재 법수사지 석축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당간지주를 통해 거대했던 법수사의 규모와 입구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영문

Flagpole Supports at Beopsusa Temple Site

Flagpole supports are a pair of stone pillars set up to support a flagpole that was used to mark Buddhist temple precincts by hanging flags or to celebrate special events and large gatherings by hanging banners.

These flagpole supports were made for Beopsusa Temple, which was founded in 802. According to records, Beopsusa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oday, only a three-story stone pagoda and foundation structures remain. The distance between the flagpole supports and the temple site is approximately 100 m. Considering that a flagpole stands at the entrance of the temple, the distance between the flagpole supports and the temple site suggests the temple occupied a large area of land at that time.

These flagpole supports have a simple shape without decoration. The stone base between the two supports has a hole in which the flagpole would have been placed.

  • changed "which" to "that" in definition

영문 해설 내용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을 말한다. 당(幢)을 매달아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중요한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알리기 위해 사용했다.

이 당간지주는 802년에 창건된 법수사에 속해있었다. 법수사는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삼층석탑과 석축만이 남아있다. 법수사의 옛터와 이 당간지주 사이의 거리는 약 100m 정도이다. 보통 사찰 입구에 당간지주가 세워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 법수사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장식이 없이 간결한 모습이다. 아래쪽에 당간을 받치는 간대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