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적성
단양 적성 Jeokseong Fortress, Dan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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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단양 적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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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Jeokseong Fortress, Danyang |
한자 | 丹陽 赤城 |
주소 |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265호 |
지정(등록)일 | 1979년 7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64,879㎡ |
웹사이트 | 단양 적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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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산성에서 발견된 단양 적성비의 내용을 보면 단양 적성은 진흥왕 15년(554) 신라가 죽령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데 필요한 요충지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성의 둘레가 1,768척이며 성내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단양 적성이 고려시대까지 단양 지방을 다스리는 읍성 구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유물도 발견되고 있다.
단양 적성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북서쪽은 경사가 급하고, 남동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성벽은 기초 부분을 돌과 진흙으로 다져 단단히 하였고, 성의 외벽은 자연석으로 쌓았다. 성의 안쪽은 말을 타고 병사가 다닐 수 있게 평평하게 다져 쌓았다. 성을 쌓는 방법이 매우 견고하여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문
Jeokseong Fortress, Danyang
영문 해설 내용
성재산(해발 323.7m) 정상부에 위치한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8년 이 산성에서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가 발견되었다. 비문에 따르면, 이 산성은 6세기 중반 신라가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데 요충지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단양 지방을 다스리는 치소 구실을 했다.
적성은 동서로 긴 타원형이며, 북서쪽은 경사가 급하고 남동쪽은 완만하다. 성벽의 기초는 돌과 진흙으로 단단히 다지고, 외벽은 자연석으로 쌓았다. 성의 안쪽은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게 평평하게 만들었다.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 조각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토기, 청자 조각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