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선생 묘
이익선생 묘 Tomb of Yi 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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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익선생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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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Yi Ik |
한자 | 李瀷先生 墓 |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5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40호 |
지정(등록)일 | 1977년 10월 13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이익선생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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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조선 후기 실학(實學)의 대가 이익(1681~1763)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字)는 자신(子新), 호(號)는 안산 첨성리(瞻星里)의 명칭을 따 성호(星湖)라 하였다. 선생은 해박한 지식과 소양을 바탕으로 「성호사설(星湖僿說)」 과 「곽우록(藿憂錄)」 등 100여 권의 저술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실증적으로 분석·비판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은 안정복,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어 우리나라 실학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이곳 묘역에는 원래 이익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둘째 형 이잠, 선생의 외아들 이맹휴, 손자 이구환, 그리고 선생의 숙부 이국진 등 5위의 묘가 모셔져 있었다. 이후에 1977년 6월 반월공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이익 선생 묘를 포함한 모든 분묘가 이장 공고 되었으나 이익 선생의 묘소만은 원위치에 보존해야 한다는 지역 사회와 학계의 중론에 따라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
1985년 우리나라의 민족 문화를 빛낸 선현 중 사상분과(思想分科) 10인의 선현으로 이익 선생이 선정됨에 따라 묘역이 정비되었고, 1988년에는 사당 첨성사(瞻星祠)와 재실 경호재(景湖齋)의 준공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2002년에는 선생의 묘역 건너편에 성호기념관을 건립함으로써 선생의 실학사상을 기리고 있다.
- 사당: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 재실: 무덤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영문
This is the tomb of Yi Ik (1681-1763, pen name: Seongho), a master scholar of the late Joseon period.
Throughout his life, Yi Ik stayed in his hometown in Ansan and dedicated himself to studying rather than pursuing official positions. In particular, he criticized the absurdities of Joseon society and proposed various reformative policy measures, such as a limitation on the wealthy’s excessive land ownership and the gradual emancipation of servants. His principles and achievements became the cornerstone of "Practical Learning (silhak),” an 18th century school of thought.
This site was originally a family cemetery that also included the tombs of Yi Ik’s uncle, brother, son, and grandson. However, when an industrial complex was established in this area in 1977, all the tombs except Yi Ik's were relocated.
The tombstone, stone table, stone incense table, and stone pillars were erected in front of the tomb in 1967, while the shrine and the ritual house to the right of the tomb were built in 1988. In 2002, the Seongho Memorial Hall was built near the tomb to commemorate the academic achievements of Yi Ik and other silhak scholar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이익(1681-1763)의 묘이다.
이익은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인 안산에 머물며 학문에 정진했다. 특히 부자들의 무분별한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노비 신분을 점차 해방시킬 것을 주장하는 등 당시 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개혁을 이루기 위한 여러 정책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익의 학문과 사상은 18세기 한국 실학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이곳은 원래 이익을 비롯하여 숙부, 형, 아들, 손자 등의 묘가 함께 있던 가족 묘역이었다. 1977년 이 지역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이익의 묘만 원래의 위치에 보존되고, 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다.
묘소 앞에 있는 묘비, 상석, 향로석, 망주석 등은 1967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묘소 오른쪽의 사당과 재실은 1988년에 지어졌다. 또한 2002년에는 이익을 비롯한 여러 실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묘역 건너편에 성호기념관이 건립되었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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