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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동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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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1월 25일 (월) 09: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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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동산정
파일:함안동산정.jpg
함안 동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안 동산정
한자 咸安 東山亭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441호
지정(등록)일 2008년 2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함안 동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산정은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호성(李好誠)이 지은 정자이다. 이호성은 거제현감·경상좌도병마절제사로 있으면서 성을 쌓아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다. 또한 20여 년간 여진정벌에 참여하여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렸다. 세종은 그에게 무(武: 엄하고 굳세며), 용(勇: 결단력이 과감하고), 청(淸: 청렴결백하며), 개(介: 사리가 곧고 바르다)의 휘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1467년(세조 13)에 죽으니 시호는 정무(靖武)이다.

이호성은 김천 출신으로 함안은 처가가 있는 곳이다. 1459년경에 동지산 기슭의 함안천 절벽 위에 정자를 지었다. 그의 손자 이희조(李希祖)가 ‘동산정’이라 하였다. 현재 모습은 1935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동산정은 출입문인 소원문(溯源門)과 4칸의 정자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에는 2칸의 온돌방이 있고, 양쪽에 마루가 1칸씩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의 정자 건축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함안 무진정에서도 보인다. 동산정은 일제강점기 정자 건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고, 영·호남의 정자 문화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문

Dongsanjeong Pavilion, Haman

This pavilion was originally built in 1459 by Yi Ho-seong (1397-1467, penname: Dongsan), a military official of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orn in Gimcheon, Yi built a fortress to defend the region from Japanese pirates while serving as the county magistrate of Geoje-do Island and the deputy provincial naval commander for Gyeongsang-do Province. He was also in charge of defending the northern territory for twenty years, and his thorough understanding on the geography prevented him from making mistakes. At that time, he was nicknamed as a “flying general” for his speed. Later he became the Minister of War, the highest position for a military official.

Haman is the hometown of his wife. Yi’s grandson, Yi Hui-jo named this pavilion as “Dongsanjeong” taking Yi Ho-seong’s penname.

Today’s pavilion, reconstructed in 1935,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ain quarters, and auxiliary walls. The main quarters consists of an underfloor-heated room and wooden-floor on each side, which is commonly seen in pavilions in the western Gyeongsangnam-do Province and Jeollanam-do Province.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1459년경에 이호성이 지은 정자이다. 현재 모습은 193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호성(1397~1467)은 김천 출신의 무관으로 거제현감·경상좌도병마절제사로 있으면서 성을 쌓아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다. 또한 20여 년간 북방을 수비하였는데, 지리를 잘 알아 실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 나는 듯 빠르다는 뜻으로 ‘비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인으로서 최고위직인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함안은 그의 처가가 있는 곳이며, 정자 이름은 그의 손자 이희조가 이호성의 호 동산에서 따서 지었다.

정자는 대문채와 본채, 부속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운데 온돌방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지역의 정자 건축에서 주로 보이는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