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광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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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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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광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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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心亭 |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봉촌2길 461-29 (봉촌리)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217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5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함안 광심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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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광심정은 조선시대 1569년(선조 2) 지금의 창녕군 길곡면에 살고 있던 용성 송씨 문중의 청년들이 공부하기 위해 만든 정자이다. 낙동강 변 절벽 위에 있다. 임진왜란 때 못쓰게 되었지만 1664년(현종 5) 송지일(宋知逸) 선생이 선비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고쳐 지었다. 송지일은 그의 호를 따서 ‘수양을 통해 넓은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로 ‘광심정’이라 편액*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번 고쳐 지었다. 광심정 내부의 편액들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광심정은 대문과 담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건물은 앞면과 옆면 모두 2칸으로 마루를 앞에 두고 뒤쪽에 온돌방 2개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 편액(扁額) : 나무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로 흔히 현판이라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1569년 용성 송씨 문중의 청년들이 공부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파손된 것을 1664년 학자 송지일과 유림들이 고쳐지었다. 송지일은 그의 호를 따서 ‘수양을 통해 넓은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로 ‘광심정’이라 이름지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정자 내부의 편액들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건물은 절벽 위 경사면에 기단을 높게 쌓아 지었다. 마루를 앞에 두고 뒤쪽에 온돌방 2개를 두었으며,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앞마당의 담장을 낮게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