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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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1월 13일 (수) 18: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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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Pungnammun Gate, Jeonju
전주 풍남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전주 풍남문
영문명칭 Pungnammun Gate, Jeonju
한자 全州 豐南門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전동)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308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전주 풍남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풍남문은 조선 시대에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를 둘러싼 전주성의 남쪽 문이다. 원래 전주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문이 있었지만 세 개는 철거되고 풍남문만 남았다 영조 때 전라도 관찰사 조현명의 기록에 따르면 영조 10년(1734)에 전주부성을 크게 고쳐 쌓으면서 이 문을 명견루(明見樓)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영조 43년(1767)에 불타자 관찰사 홍낙인이 다시 짓고 풍남문이라 하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태어난 풍패(豊沛)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 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풍패에 비유하여 풍패향이라 불렀으며,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으로 풍남문이라 하였다.

문루* 2층의 남쪽 면에는 전주가 조선 왕조의 고향임을 의미하는 ‘풍남문’, 북쪽 면에는 전라도 행정 중심지로서의 의미인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성문 밖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고 만든 반원형의 옹성(甕城)이 있다.


  • 문루門樓: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영문

Pungnammun Gate, Jeonju

Pungnammun Gate was the south gate of Jeonjueupseong Walled Town where the Jeollagamyeong Provincial Office was located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Jeonjueupseong Walled Town was first built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bu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It was significantly reconstructed in 1734, but a huge fire burnt down the south and west gates in 1767. They were rebuilt the following year, and the south gate was given the name “Pungnammun” by the provincial governor Hong Nak-in (1729-1777).

The name “Pungnammun” means “the south gate of Pung.” Jeonju was nicknamed Pung, after the Chinese city of Feng, which is the hometown of the founder of the Chinese Han dynasty. This reveals the sinocentric worldview at that time creating a parallel between Feng and Jeonju, for the ancestors of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were from Jeonju.

Originally, there were four gates in each direction around the walled town, but the other three were demolished during urban development in the early 20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읍성의 남문이다.

전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처음 쌓았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파괴되었다. 1734년에 대규모로 고쳐 지었고, 1767년 큰 화재로 남문과 서문이 모두 소실되었다. 이듬해 새로 지었고, 당시의 전라도 관찰사였던 홍낙인(1729-1777)이 남문에 풍남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풍남문은 ‘풍패향의 남쪽문’이라는 뜻이다. 전주는 ‘풍패향’이라고 불렸는데, 풍패는 원래 중국 한나라 고조(高祖)의 고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주가 ‘풍패향’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조상이 대대로 전주에 살았기 때문이다.

원래 읍성에는 동서남북 네 곳에 문이 있었지만, 세 개는 20세기 초 도시개발에 따라 철거되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