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경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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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7월 23일 (월) 07:10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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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경체정
대표명칭 봉화 경체정
한자 奉化 景棣亭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경체정길 10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508호
지정(등록)일 2017.05.15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해설문

국문

경체정은 법천(法川) 강윤(姜潤, 1711~1782), 백이(白以) 강완(姜浣, 1714~1794), 류천(柳川) 강한(姜瀚, 1719~1798) 삼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류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 선생이 철종 5년(1854)에 건립하였다.

이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정방형(正方形) 팔작집이다. 전면 2칸은 통칸(通間)으로 우물마루를 깔았고, 배면(背面)에 온돌방 2칸을 배치하였다. 정방형 팔작지붕으로 인해 마루방 상부에는 정면 쪽으로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보 방향으로 퇴량(退樑)을 건너질렀다. 마루방의 전면과 좌측면에 사분합(四分閤) 들문을 달아 필요할 때 개폐하도록 하였다. 마루방과 온돌방 사이의 문은 머름 위에 들문을 설치하였고, 들문의 중앙에 쌍여닫이 띠살문을 두어 평상시에는 이 문을 통하여 방으로 출입하게 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시회(詩會) 같은 행사 때에는 모든 문을 열어 넓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정자의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러 외부와 공간을 구획하였고, 좌측 끝에 사주문(四柱門)을 달아 정자를 출입하게 하였다. 정자 앞에는 방형(方形)의 연지(蓮池)를 만들어 두었는데, 그 너머로 법전천이 흐르고 있다. 주위에 노거수(老巨樹)들이 우거져 주변 경관과 매우 잘 어울리며,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간 이용 수법이 뛰어난 정자이다.

현판 글씨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선생과 조선 말기에 영의정을 지낸 영어(潁漁) 김병국(金炳國, 1825~1905) 선생이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문용 원고

Gyeongchejeong Pavilion, Bonghwa

경체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강윤(姜潤, 1711~1782), 강완(姜浣, 1714~1794), 강한(姜瀚, 1719~1798) 삼형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강윤의 증손자인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 1854년에 건립하였다.

삼형제는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화친에 반대하여 봉화로 은거한 강흡의 고손자이다. 집안이 3대째 벼슬을 하지 않아 가세가 기울어지자, 삼형제는 뜻을 모아 학문에 전념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문중을 명문가로 다시 번창시켰다. 정자의 이름은 '형제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한다'[“검토” 1]는 뜻이다.

이 정자는 정사각형의 팔작지붕집으로, 우물마루와 온돌방이 있다. 평상시에는 여닫이문을 통해 방으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고, 시회(詩會) 같은 행사 때에는 모든 문을 열어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정자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고, 정자 앞에는 방형의 연지를 만들어두었다.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화가인 김정희(1786~1856)와 조선 말기에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金炳國, 1825~1905)이 썼다고 전해진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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