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 생가
신익희 생가 Birthplace of Sin Ik-hu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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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신익희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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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irthplace of Sin Ik-hui |
한자 | 申翼熙 生家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서하길 6-25 (초월읍)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34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신익희 생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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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익희(申翼熙)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임시 헌법을 기초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의원과 초대 내무차관 등을 맡아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리고 해방 전후 시기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광복 후 제헌국회 부의장,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신익희 생가는 원래 지금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1865년 을축년 대홍수로 집이 부서져 1867년경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집이 1925년에 건축되었다고 건축물대장에 기재되어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티(T)’자형을 이루는데 중앙에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과 좌측으로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 부엌을 두었다. 바깥채는 ‘ㄴ’자형으로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좌측에 2칸의 사랑방을 두었다.
이 집은 전체적으로 19세기 또는 20세기 초 경기지역 중소 지주 계층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영문
Birthplace of Sin Ik-hui
This is the birthplace of Sin Ik-hui (1894-1956), a Korean politician and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Sin was one of the key member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e drafted the constitution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when it was established in 1919. After liberation in 1945, he became an influential political leader and served as the chairman of the National Assembly. He ran for the third presidential election in 1956, but died of cerebral hemorrhage in a train during his campaign trail, ten days prior to the election. In 1962,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This house was first built in 1867 and renovated in 1925. Unfortunately, in 2002, there was a major fire, and the house was completely destroyed. It was rebuilt in 2004 based on the original layout. Today, the house consists of an main quarters and outer quarters. The main quarter has two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of the wooden-floored hall, with a kitchen on the far right. The outer quarters consists of a gate in the center and a guestroom on the left.
영문 해설 내용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신익희(1894-1956)의 생가이다.
신익희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임시 헌장을 기초하는 등 요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56년에는 대한민국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선거 열흘 전 유세를 위해 이동하던 중 기차 안에서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생가는 원래 지금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1865년 대홍수로 집이 부서져 1867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25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중앙에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방을 두고, 맨 오른쪽에 부엌을 두었다. 바깥채는 가운데에 대문을 두고 왼쪽에 사랑방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