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인당
학인당 Hagindang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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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학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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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gindang House |
한자 | 學忍堂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45 |
지정(등록) 종목 | 시도민속문화재 제8호 |
지정(등록)일 | 1976년 4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5필지(1,656.1㎡) |
웹사이트 | 학인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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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학인당은 대한제국 시기 효자로 알려진 백낙중(白樂中)이 살았던 집이다. 그의 호 인재(忍齋)의 ‘인’ 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으며 압록강과 오대산 등지의 목재를 사용하여 1908년에 완공하였다.
집을 지을 때 고종은 경복궁 중건에 협력한 백낙중의 노고를 배려하여 궁궐의 목수를 보냈다고 한다. 건립 당시 99칸짜리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학인당과 부속건물 6채만 남아있다.
학인당은 조선 후기의 전통 건축기술을 이어받아 지은 한옥으로, 궁중 건축양식을 민간 주택에 도입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영문
Hagindang House
This house was used as the residence of Baek Nak-jung (1882-1930), whose family had ties to King Gojong (r. 1863-1907) and was renowned for their filial piety.
Started in 1905 and completed in 1908, the house was originally a large mansion that was modeled on palace architecture. Today, only Hagindang Hall and six auxiliary buildings remain.
The house was built using high-quality wood typically reserved only for royal buildings. It was equipped with electricity and tap water systems, which required highly advanced technology at the time of construction, allowing for the installation of toilets and bathrooms. The bifold external doors feature glass window panes, which are not traditional to Korean houses. Liftable papered doors throughout the house facilitate the expansion of the indoor space to allow for large group seating for traditional performances such as pansori.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백낙중(1882-1930)이 살았던 집이다. 백낙중의 가문은 고종과 친분이 있었으며 효행으로 명망이 높았다.
이 집의 건립은 1905년에 시작해서 1908년에 완공되었다. 원래는 궁궐의 건축 양식을 따른 대저택이었다. 현재는 학인당과 부속건물 6채만 남아있다.
이 집은 궁궐 건축에 사용되는 최상급의 목재를 사용해서 지어졌다. 당시로서는 첨단 시설인 전기 시설과 수도 시설도 설치되었고, 화장실과 욕실도 갖추었다. 외부의 이중문은 유리창을 두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한옥 건축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문을 떼어서 내부 공간을 넓힐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 전주시청 요청으로 마지막 문장 삭제해서 길이 조정.
참고
- "전주 백낙중 종가", 영남일보 위클리포유, 201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