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화왕산성
창녕 화왕산성 Hwaw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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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화왕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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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wawangsanseong Fortress, Changnyeong |
한자 | 昌寧 火旺山城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산322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64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242,616.3㎡ |
웹사이트 | 창녕 화왕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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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창녕 화왕산성은 화왕산(해발 756m)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화왕산성은 둘레가 2.7km에 이른다. 현재 성벽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가 남아있다. 화왕산성은 비화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근거지로 삼아 큰 전공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화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창녕의 진산**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울러 집수지에서 제사와 관련된 철제 무기와 용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형, 동물 뼈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창녕지역의 제의를 담당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화왕산성은 예로부터 창녕을 수호하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실체가 남아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
- 한 마을이나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창녕 화왕산성은 화왕산(해발 756m) 정상부를 둘러 쌓은 석성이다. 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 지역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성을 처음 쌓은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 건국 초기인 1410년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주요 산성을 수축할 때 고쳐지었으며, 1596년에는 일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다시 중수되었다. 이듬해에는 당시 의병장인 곽재우(1552-1617)가 이 산성을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성 내에는 동서남북 4곳의 문지, 건물지, 축대 시설, 연못 등이 있다. 동문과 남문은 새로 지어진 것이다.
연못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철제 무기, ‘용왕(龍王)’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형, 호랑이 뼈, 나무 조각에 글을 적은 목간(木簡),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화왕산성의 연못에서 제사와 의례가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성곽의 둘레는 약 2.7k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