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헌안왕릉
경주 헌안왕릉 Tomb of King Heonan,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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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헌안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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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King Heonan, Gyeongju |
한자 | 慶州 憲安王陵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79호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고대 |
해설문
국문
이 능은 신라 제47대 헌안왕(857~861 재위)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헌안왕은 신무왕의 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헌안왕은 불교를 통하여 지방 세력의 불만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펼쳤으며, 조서*를 내려 제방을 수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재위 5년 봄에 병으로 위독해지자 신하들에게 사위 응렴(膺廉)이 왕위를 잇도록 유언하였다. 그 후에 곧 세상을 뜨니 공작지(孔雀趾)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자연석으로 만든 둘레돌의 일부가 표면에 드러나 있고,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있다. 공작지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조선 정조 16년(1792) 경상감사** 보고문에는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같은 언덕 위에 있다.”라고 하였다.
조서: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 경상감사: 다른 말로는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라고 한다.
영문
This is known to be the tomb of King Heonan (?-861, r. 857-861), the 47th ruler of the Silla dynasty (57 BCE–935 CE).
King Heonan was the younger brother of King Sinmu (r. 839) and the nephew of King Munseong (r. 839-857). He created policies to alleviate the discontent of regional leaders through Buddhism. He also ordered levees to be repaired and implemented policies promoting agriculture. He became critically ill in the fifth year of his reign, and without a son, requested that his relative and son-in-law become king after his death, which he did as King Gyeongmun (r. 861-875).
The tomb mound is surrounded by natural stones at its base.
Memo
- Left out info on why presu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