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장사
칠장사 Chiljangsa Te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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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칠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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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iljangsa Temple |
한자 | 七長寺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24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9월 1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안성 칠장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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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칠장사는 안성시 칠현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나 자료가 분명하지는 않다.
칠장사의 내력은 고려 시대부터 잘 보존되어 있다. 고려 우왕 9년(1383)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충주 개천사에 있던 실록을 이곳으로 옮겨 와 보관했다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고 사찰을 크게 고쳐 짓고 직접 글씨를 쓴 불경과 족자를 절에 내려 주었다.
이후 이곳을 눈여겨보던 세도가들의 위협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절을 지키려는 스님들의 노력으로 터를 옮겨 가며 다시 짓고 절을 보존했다. 특히 조선 숙종 30년(1704)에는 옛터를 회복하여 56동에 이르는 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증축 등의 불사(佛事)가 있었지만 고종 24년(1887)에 큰불이 나서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사천왕문과 불상, 불화(佛畫) 등만 남았다. 부속 암자로 백련암, 극락암, 명적암, 상운암 등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명적암을 제외한 다른 암자들은 폐사되거나 칠장사로 통합되었다.
칠장사에는 다양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초 혜소 스님이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선량하지 못한 7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고, 혜소국사가 되었으며, 입적 후에는 왕명을 받아 행적비가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궁예가 19살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 이야기와 임꺽정이 스승 병해대사가 입적하자 꺽정불(꺽정佛)을 만들어 극락전에 모셨다는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나한전에서 자다가 꿈에서 시험 문제를 보고는 장원 급제를 했다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영문
Chiljangsa Temple
Chiljangsa Temple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by Jajang (590-658), an eminent monk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Later in 1014, the temple was expanded by State Preceptor Hyeso.
The temple continued its great reputation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In 1383, when Japanese pirates made an invasion, the annals of the Goryeo dynasty, which were kept at a temple in Chungju, were temporarily moved to Chiljangsa to avoid any possible destructio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Queen Dowager Inmok (1584-1632) selected this temple to pray for the spirits of her deceased father and son. As the location of this temple was regarded auspicious, many powerful families wanted to take it to make their family cemetery and destroyed the temple several times by fire. In 1704, through a large-scale reconstruction, more than 50 buildings were built in this temple’s premises. However, the temple was burned down again in 1887, leaving Daeungjeon Hall, Wontongjeon Hall, Myeongbujeon Hall, Nahanjeon Hall, and the Gate of the Four Guardian Kings. Since then, this temple underwent several reconstruction and repairs, and currently there are a total of 12 buildings.
There are several legend about this temple. When Hyeso stayed in this temple, seven thieves came to see him. Influenced by the monk’s teaching, the thieves were enlightened and became wise men. The statues representing these seven wise men are enshrined in Nahanjeon Hall.
Another story is about Bak Mun-su (1691-1756), a renowned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When he was on his way to Hanyang (today’s Seoul area) for state examination, he stayed one night in this temple. Here, he dreamed of an arhat who told him about the examination question, and he won the first place in the examination.
영문 해설 내용
칠장사는 삼국시대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014년에 혜소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칠장사는 고려시대에도 명망이 높은 사찰이었다. 1383년 왜구가 침입하였을 때 충주의 한 사찰에 보관하고 있던 고려왕조의 실록을 이곳에 옮겨 잠시 보관하였다. 조선시대인 1623년에는 인목대비(1584-1632)가 아버지와 아들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았다. 사찰의 위치가 상서로운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부 세도가문에서 이곳을 가문의 묘역으로 쓰려고 사찰에 여러 차례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1704년 대규모의 중수를 통해 56동에 이르는 전각을 다시 지었다. 그러나 1887년 대화재로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사천왕문만 남게 되었다. 이후 중건과 보수를 거쳐 현재 경내에는 12동의 건물이 있다.
칠장사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무를 때 7명의 도적이 스님을 찾아왔는데, 스님의 지혜로운 설법에 모두 감화되어 현인이 되었다고 한다. 나한전에는 이 7명의 현인을 표현한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조선 후기의 이름난 문신인 박문수(1691-1756)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꿈에 나한이 나타나 시험문제를 알려주었고 박문수는 장원급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