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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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청량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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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봉화 청량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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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化 淸凉精舍 |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산길 199-136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76호 |
지정(등록)일 | 2017.05.15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1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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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청량정사는 청량산(淸凉山)의 연화봉(蓮化蜂)과 금탑봉(金塔峰) 사이에 자리 잡은 정자이다. 조선 중종 때 문신 송재(松齋) 이우(李瑀, 1469~1517) 선생이 건립하였다. 선생이 조카인 이해(李瀣)와 이황(李滉) 및 사위인 조효연(曺孝淵), 오언의(吳彦毅) 등을 가르치던 곳이다. 이후 퇴계(退溪) 이황 선생이 이곳 청량정사에서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며 김성일(金誠一), 유성룡(柳成龍), 정구(鄭逑) 등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또한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도 이곳에서 저술하였다.
순조 32년(1832)에 와서 퇴계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유림에서 정자를 중수하였다. 이후 청량정사는 퇴계 선생의 뜻을 기리는 많은 후학들이 찾아와 학문을 수양하는 장소가 되었다. 또한, 구한말에는 청량의진(淸凉義陳)이 조직되어 의병 투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일본군의 방화로 인해 1896년에 소실되었던 것을 1901년에 중창한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집이다. 평면은 마루방 2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지숙료(止宿僚)가 있고, 우측에는 운루헌(雲樓軒)을 두었다. 마루방은 전면에 사분합(四分閤) 들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호(當號)는 오산당(吾山堂)이고 문은 유정문(幽貞門)이며, 현판 글씨는 조선 말기의 서예가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 선생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