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도잠서원
도잠서원 Dojamseowon Confucian Acade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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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도잠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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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Dojamseowon Confucian Academy |
한자 | 道岑書院 |
주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399 (용호리)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100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3동 |
웹사이트 | 영천 도잠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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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도잠서원은 조선 선조(宣祖) 때 학자인 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 1545~1609)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광해군(光海君) 4년(1612)에 세워졌고 숙종(肅宗) 4년(1678)에 사액(賜額)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그것을 새긴 액자를 내리는 일되었다.
지산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우기도 했으며,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서원은 고종(高宗)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1914년에 복원되었고, 1981년에 보수·정화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지봉서원이라 불리었으며, 일자형으로 된 강당 5칸과 지산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했다는 망회정 등 6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2동만 남아 있다.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서원의 강당은 전면이 개방된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한 칸, 우측에 온돌방 두 칸이 있는데 이들 각 방 앞에는 쪽마루가 달려 있다.
국문 수정
이 서원은 1612년(광해군4)에 조호익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678년(숙종4)에는 나라에서 ‘도잠’이라는 현판을 사액1)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에 철거되었다. 그 이후, 1914년에 복원하였고, 1981년에 보수하였다.
서원 입구에는 ‘關西夫子(관서부자)’라 쓴 표석이 있었다. 부자는 대학자란 뜻인데, 실제로 조호익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퇴계이황의 제자이다. 그는 “퇴계 선생이 순수하고 온화해 모시고 있으면 화기(和氣)가 사람을 엄습한다”며 큰 감화를 받아 23세에는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올라가는 퇴계를 모시기도 했다. 3년 뒤, 스승이었던 퇴계가 세상을 떠났고,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호익은 성천으로 들어가 제자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500여 명을 모았다.
조호익은 군대에서 군졸들과 같이 잠잘 때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대삿갓을 쓰고 가죽버선을 신었다고 한다. 이토록 철두철미했던 그는 놀라운 예지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한번은 한밤중에 참모를 불러 진영을 옮기라고 했는데, 일부가 반대하자 그는 “명령을 어기는 자는 참수하겠다”라고 하여 마침내 진영을 옮겼다고 한다. 얼마 뒤 적병이 습격하였고, 그의 예지력에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이 곳에는 사당2), 강당3), 망회정4), 신도비5), 비각6), 사주문7), 포사8) 등이 있다. 묘우9)에는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 사액: 조선시대에 왕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현판)을 내리던 일
- 사당: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
- 강당: 유학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건물
- 망회정: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
- 신도비: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
- 비각: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건물
- 사주문: 담장에 설치한 대문
- 포사: 제사를 지낼 때 제수를 장만하기 위한 곳으로, 서원을 지키는 사람이 머물던 곳
- 묘우: 신주(神主)를 모신 집. 사당(祠堂)ㆍ가묘(家廟)라고도 한다.
영문
Dojamseowon Confucian Academy
Confucian academies, called seowon in Korean, are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hich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도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1545~1609)을 모신 서원이다. 조호익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이황(1501-1570)의 제자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예학에 관심이 많아, 『가례(家禮)』의 어려운 부분을 고증하여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편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서원은 1612년 지봉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1678년 숙종((재위 1674-1720)이 ‘도잠(道岑)’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한때 철거되었다가 1914년에 다시 세워졌고 1981년에 보수되었다.
경내에는 정문, 동재와 서재, 교육공간인 회만당, 내삼문, 사당인 성모묘와 조호익이 생전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망회정 등이 있다.
참고
- “영천 도잠서원”, 경북일보, 201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