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안대군 묘
회안대군 묘 Tomb of Prince Ho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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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회안대군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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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Prince Hoean |
한자 | 懷安大君 墓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59-5 |
지정(등록) 종목 | 시도기념물 제123호 |
지정(등록)일 | 2005년 12월 16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2기 |
웹사이트 | 회안대군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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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 이방간(李芳幹) 묘이다. 이방간의 호는 망우당(忘牛堂)이고, 시호는 양희(良僖)이다.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1년(1392) 회안군에 봉해졌다. 1398년에 동생 이방원과 1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여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다. 정종 2년(1400)에 박포와 함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토산, 익산, 전주, 홍성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유배 중인 태종 1년(1401) 회안대군에 봉해졌다.
회안대군묘는 금상동 법사산의 남쪽 끝자락에 부인 김포금씨(金浦琴氏)묘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하게 묘가 위아래 세로로 조성되어 있는데, 위가 방간의 묘이고, 아래가 부인의 묘이다.
이 터는 군왕이 나올 명당으로 여겨져 뜸을 떠서 땅의 기운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산허리에 파놓은 구멍들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뜸터’라고 부른다.
영문
Tomb of Prince Hoean
This is the tomb of Yi Bang-gan (?~1421), the fourth son of the King Taejo (r.1392-1398),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Bang-gan joined his brother Yi Bang-won, the fifth son who later became the third king (r.1400-1418), in a bid to revolt against the designation of a crown prince in 1398. This event, called the first princes’ rebellion, succeeded in replacing the designated crown prince and removing the powerful political faction led by Jeong Do-jeon (1342-1398). In 1400, the succession issue rose again. With his close associates instigating a rebellion, Bang-gan deployed private military to remove his brother Bang-won, only to fail. This event is called the second princes’ rebellion. Bang-gan was banished to today’s Hwanghae-do province. Then, he was moved to different locations several times before he came to Jeonju area in 1410.
The tombs of Prince Hoean and his wife lady Geum of the Kimpo clan are situated at this site. Unlike the usual case where husband and wife’s tombs are located side-by-side, the tomb of prince Hoean is located behind the wife’s.
영문 해설 내용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이방간(?~1421)의 묘이다.
1398년에 후계자 선정 문제를 둘러싸고 동생 이방원과 1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여 정도전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다. 1400년에 다시 후계 문제가 불거지고 측근들의 충동으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고, 지금의 황해도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유배지를 여러 차례 옮겼고, 1410년 전주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회안대군묘는 부인 김포금씨의 묘와 함께 있다. 보통 부부의 묘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는데, 이 묘에서는 뒤가 방간의 묘이고 앞쪽이 부인의 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