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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량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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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량 유허비
손홍량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손홍량 유허비
한자 孫洪亮 遺墟碑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 267-1번지
국가유산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손홍량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유허비란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손홍량 유허비는 고려 시대의 문신 손홍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20년(1744) 그가 살던 집터에 세워졌다.

손홍량은 안동 출신으로 충선왕(1308~1313 재위)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충정왕 3년(1351)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지내다가, 공민왕 11년(1362) 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하였을 때 왕을 보필하였다. 도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공민왕 13년(1364) 그를 ‘한결같고 곧은 사람’이라 칭찬하며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하였다.

유허비는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높이는 2.5m이다. 머릿돌에는 용 두 마리가 구슬을 사이에 두고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을 새겼다. 비문은 문신 조현명이 짓고 권서가 글씨를 썼으며, 비석의 제목의 글씨는 문신 서명균이 썼다.


  • 궤장(机杖): 왕이 70세 이상의 대신에게 선물로 내린 의자와 지팡이

영문

Stele of Son Hong-ryang

This stele was erected in 1744 to honor Son Hong-ryang (1287-1379),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t the dwelling site where he lived.

Ater Son Hong-ryang from And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seon (r. 1308-1313), he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In 1351, he retired and enjoyed(?) returning to his hometown, but he aided the king in 1362 when the king took refuge in the Andong area during the Red Turban invasions of 1359-1362. When King Gongmin went back to the capital in 1364, he praised him as "a devoted and upright person", bestowing him with a portrait, chair and staff.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and it measures 2.5 m in overall height. The capstone is carved in the shape of two dragons with a wish-fulfilling jewel between them surrounded by clouds. The inscription was composed by civil official Jo Hyeon-myeong (1690-1752) and calligraphed by Gwon Seo (1698-1780), and the name of the stele was calligraphed by calligrapher Seo Myeong-gyun (1680-1745).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고려시대의 문신 손홍량(1287-1379)을 기리기 위해 1744년 그가 살던 집터에 세워졌다.

손홍량은 안동 출신으로 충선왕(재위 1308-1313)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1351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지내다가, 1362년 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하였을 때 왕을 보필하였다. 도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1364년 그를 ‘한결같고 곧은 사람’이라 칭찬하면서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하였다.

비석은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높이는 2.5m이다. 머릿돌에는 용 두 마리가 구슬을 사이에 두고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을 새겼다. 비문은 문신 조현명(1690-1752)이 짓고 권서(1698-1780)가 글씨를 썼으며, 비석 제목의 글씨는 문신 서명균(1680-1745)이 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