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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량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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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6월 18일 (토) 17: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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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량 유허비
손홍량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손홍량 유허비
한자 孫洪亮 遺墟碑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송리 267-1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손홍량 유허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유허비란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손홍량 유허비는 고려 시대의 문신 손홍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영조 20년(1744) 그가 살던 집터에 세워졌다.

손홍량은 안동 출신으로 충선왕(1308~1313 재위)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충정왕 3년(1351)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지내다가, 공민왕 11년(1362) 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하였을 때 왕을 보필하였다. 도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공민왕 13년(1364) 그를 ‘한결같고 곧은 사람’이라 칭찬하며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하였다.

유허비는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높이는 2.5m이다. 머릿돌에는 용 두 마리가 구슬을 사이에 두고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을 새겼다. 비문은 문신 조현명이 짓고 권서가 글씨를 썼으며, 비석의 제목의 글씨는 문신 서명균이 썼다.


  • 궤장(机杖): 왕이 70세 이상의 대신에게 선물로 내린 의자와 지팡이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고려시대의 문신 손홍량(1287-1379)을 기리기 위해 1744년 그가 살던 집터에 세워졌다.

손홍량은 안동 출신으로 충선왕(재위 1308-1313)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1351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지내다가, 1362년 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하였을 때 왕을 보필하였다. 도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1364년 그를 ‘한결같고 곧은 사람’이라 칭찬하면서 궤장과 초상화를 하사하였다.

비석은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높이는 2.5m이다. 머릿돌에는 용 두 마리가 구슬을 사이에 두고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을 새겼다. 비문은 문신 조현명(1690-1752)이 짓고 권서(1698-1780)가 글씨를 썼으며, 비석 제목의 글씨는 문신 서명균(1680-1745)이 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