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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5일 (금) 03:11 판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
한자 安東權氏有懷堂宗家一圓
주소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94
지정번호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
지정일 2001년 6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5동
웹사이트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有懷堂 權以鎭)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이다. 보문산(普門山) 서남 방향으로 제일 아래에 안동 권씨 집성촌이 있고, 그 가운데에 유회당 종가가 있다. 종가 일원에 안채, 사랑채, 사당, 연지 배회담(徘徊潭), 광영정(光影亭) 등이 있다. 원래는 행랑채가 있었으나 광복 후 퇴락하여 없어졌다. 현재의 종가는 유회당 권이진의 아들 권형징(權泂徵)이 세운 것으로, 이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가의 안채는 ‘ㄱ’ 자형의 평면이며 사랑채는 ‘ㅡ’ 자형 평면이다. 이 둘은 약간의 사이를 두고 앞뒤로 떨어져 있다. 사랑채 뒤편의 조금 높은 곳에는 사당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종가 앞에는 배회담(徘徊潭)이라는 연지(蓮池)와 광영정(光影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들의 이름은 주자(朱子)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배회하누나(天光雲影共徘徊)”란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광영정의 안에는 동쪽에 수월란(受月欄), 서쪽에 관가헌(觀稼軒), 남쪽에 인풍루(引風樓), 북쪽에 광영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 연지: 연꽃을 심은 못.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후기의 문신 권이진(1668-1734, 호 유회당)의 후손들이 사용한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권이진은 1694년 과거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1728년에 일어난 반란을 수습하여 공신이 되었다.

권이진은 1707년 부친의 묘소를 이장하고 재실인 유회당을 지으면서 이 집을 함께 지어 가족들과 이 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지었으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왼편에 안채가, 오른편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뒷편에 사당이 있다.

집 앞에는 초가지붕을 올린 정자와 정자 아래의 수로를 통해 물이 흘러들어오도록 설계된 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정자 옆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00여 년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 집 옮기기 이전 화재 년도 확인 필요 => 1766년 or 1784년
  • 원래는 행랑채가 있었으나 광복 후 퇴락하여 없어졌다.
  • 먼저 남쪽의 광영정(光映亭)은 함께 조성한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는 정자란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동쪽엔 수월난(受月欄)은 달빛을 받아들이는 난간이라는 의미로 달이 뜨는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지은 이름으로 보였다. 서쪽엔 관가헌(觀稼軒)으로, 농사짓는 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았다. 북쪽엔 인풍루(引風樓) 바람을 받아 들이는 누각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