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노변소 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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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석 : 문신의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 | *문인석 : 문신의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 | ||
− | + | *갑석 : 돌 위에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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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6일 (목) 10:38 판
창녕 노변소 묘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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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노변소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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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0 |
한자 | 昌寧 盧抃素 墓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산 86-1 |
지정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제153호 |
지정일 | 1996년 3월 11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창녕 노변소 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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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고려 말기 한림원학사승지(翰林院學士承旨)를 지낸 문신(文臣) 노변소의 묘이다.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와 충성심을 지켜 조선왕조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창녕에 은둔하여 살았다.
노변소의 묘는 두 개의 단으로 만들어졌는데, 윗단에 네모난 무덤과 비석이 있고 바깥쪽에 문인석* 2점이 마주보고 세워져 있다. 무덤 아래에는 네모난 모양의 둘레돌이 둘러져 있고 그 위에 갑석(甲石)**이 있다. 이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무덤 형태를 보여준다.
문인석은 전체적으로 머리가 몸통에 비해 크고 얼굴에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데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왼쪽의 문인석은 약간 근엄하고, 오른쪽의 문인석은 미소를 띠고 있다. 고려말기와 조선전기의 조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문인석 : 문신의 모양으로 깎아 만든 돌
- 갑석 : 돌 위에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려 말 문신 노변소의 무덤이다.
노변소는 조선 건국 후에도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관직에 나가지 않고 창녕에 은둔하며 살았다.
사각형으로 조성된 봉분 아래쪽에는 봉분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직사각형의 돌을 2단으로 둘렀다.
묘 앞에는 오른편에 비석이 있고 그 아래쪽에 문인석 1쌍이 서 있다.
문인석은 머리가 몸통에 비해 크고 얼굴에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왼쪽의 문인석은 약간 근엄하고, 오른쪽의 문인석은 미소를 띠고 있어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