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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호암지구 택지개발 사업 부지 내 유적 기왓가마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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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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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마는 조선시대에 기와를 생산하던 곳이다. 2014년 호암동의 택지개발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총 18기의 가마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상태가 양호한 4기의 가마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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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는 모두 지하식의 오름가마로, 소성실부터 연소실까지의 구조가 잘 남아있으며, 불턱은 1~3단의 계단식이다. 가마의 벽체를 보수한 흔적과 단면을 조사한 결과 최소 2회 이상의 조업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15세기~17세기 이후의 기와류 총 82점이 출토되었으며, 이 가마들이 시기를 달리하여 운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6호 기왓가마에서는 암·수키와를 비롯한 문양이 없는 벽돌이 소성실에서 구울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6호 기왓가마는 당시 기와를 구울 때, 가마에 기와를 넣는 방법과 가마 1기당 1회 생산량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중요하다.
  
  

2024년 8월 16일 (금) 14:39 판


충주 호암지구 택지개발 사업 부지 내 유적 기왓가마터
대표명칭 충주 호암지구 택지개발 사업 부지 내 유적 기왓가마터
한자 忠州 虎岩地區 宅地開發 事業 敷地 遺蹟 內 기왓가마터



해설문

국문

충주시 호암지구 택지개발 사업 부지 발굴 조사를 할 때, Ⅶ구역에서 6기, Ⅷ구역에서 12기 등 총 18기의 조선시대 기왓가마가 발견되었다. 그중 Ⅶ구역에서 상태와 유물의 모양이 좋은 4기를 옮겨와 복원하였다. 가마는 모두 지하식의 오름식가마로서 소성실(燒成室)에서 연소실(燃燒室)까지 잘 남아있으며, 불턱은 1~3단의 계단식이다. 가마의 벽체를 보수한 흔적과 단면을 조사한 내용을 보아 최소 2회 이상의 조업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기와류 총 82점이 나왔는데, Ⅶ구역의 유물은 15세기, Ⅷ구역의 유물은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그러므로 두 구역의 가마는 시기를 달리하여 운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6호 기왓가마에서는 암·수키와를 비롯한 문양이 없는 벽돌이 소성실에서 구울 당시의 모습으로 있었다. 6호 기왓가마는 당시 기와를 구울 때, 가마에 기와를 넣는 방법과 가마 1기당 1회 생산량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중요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가마는 조선시대에 기와를 생산하던 곳이다. 2014년 호암동의 택지개발 과정에서 실시된 발굴조사를 통해 총 18기의 가마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상태가 양호한 4기의 가마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하였다.

가마는 모두 지하식의 오름가마로, 소성실부터 연소실까지의 구조가 잘 남아있으며, 불턱은 1~3단의 계단식이다. 가마의 벽체를 보수한 흔적과 단면을 조사한 결과 최소 2회 이상의 조업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15세기~17세기 이후의 기와류 총 82점이 출토되었으며, 이 가마들이 시기를 달리하여 운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6호 기왓가마에서는 암·수키와를 비롯한 문양이 없는 벽돌이 소성실에서 구울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6호 기왓가마는 당시 기와를 구울 때, 가마에 기와를 넣는 방법과 가마 1기당 1회 생산량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