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서울 선농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서울선농단.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1104360000 서울 선농단], 국가문...)
 
43번째 줄: 43번째 줄: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
선농단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내던 곳으로 농경문화의 상징적 유적이다. 지금의 선농단은 147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한다.
  
 +
선농제는 중국 고대 전설에서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농사의 신 신농씨(神農氏)와 곡식의 신 후직씨(后稷氏)에게 지내는 제사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임금이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풍작을 기원하는 뜻에서 친히 농사짓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임금이 선농단 동남쪽에 마련된 밭을 갈고, 세자, 대신, 백성들이 순서대로 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의식이 끝난 후에 임금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이러한 의식은 대한제국 말기까지 계속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년에 폐지되었다. 선농단에 모셔졌던 신농씨와 후직씨의 위패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사직단으로 옮겨졌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
현재 선농단 안에는 선농제를 올렸던 단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선농단이 세워질 때 심어졌다고 한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
* 서울 선농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646
 +
* 선농단, 동대문문화원. http://dongdaemun.kccf.or.kr/home/main/tourism.php?mode=view&menuinfo_code=tourism&page=1&content_idx=3812&keyword=&keyfield=
  
  

2022년 8월 10일 (수) 15:51 판


서울 선농단
Seonnongdan Altar, Seoul
서울 선농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울 선농단
영문명칭 Seonnongdan Altar, Seoul
한자 서울 先農壇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274-1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436호
지정일 2001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수량/면적 3,933㎡
웹사이트 서울 선농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울 선농단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내던 곳으로 농경문화의 상징적 유적이다.

선농제는 중국 고대 전설에서 농사를 관장했던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지내는 제사로 신라시대부터 비롯되어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왕이 친히 친경의례*를 거행하여 선농단 동남쪽에 마련된 적전(籍田)*에서 밭을 갈아 백성들에게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리고 권농에 힘쓰고자 하였다. 세자, 대신, 백성들이 순서대로 적전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친경 후에 왕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친경의례는 대한제국 말기까지 계속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직전인 순종 3년(1909)에 사직단으로 위패가 옮겨지고 폐지되었다.

현재 선농단 안에는 선농제를 올렸던 단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선농단이 세워질 때 심어졌다고 한다.


  • 친경의례 : 임금이 농사의 모범을 보이고 풍작을 기원하는 뜻에서 직접 행하던 농사짓는 의식
  • 적전 : 임금이 몸소 농사 짓던 밭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선농단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를 지내던 곳으로 농경문화의 상징적 유적이다. 지금의 선농단은 147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한다.

선농제는 중국 고대 전설에서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하는 농사의 신 신농씨(神農氏)와 곡식의 신 후직씨(后稷氏)에게 지내는 제사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에도 이를 계승하였다.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임금이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고 풍작을 기원하는 뜻에서 친히 농사짓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임금이 선농단 동남쪽에 마련된 밭을 갈고, 세자, 대신, 백성들이 순서대로 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의식이 끝난 후에 임금은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이러한 의식은 대한제국 말기까지 계속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년에 폐지되었다. 선농단에 모셔졌던 신농씨와 후직씨의 위패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5.5km 떨어진 사직단으로 옮겨졌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재 선농단 안에는 선농제를 올렸던 단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선농단이 세워질 때 심어졌다고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