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찰대본산 용주사
| 효찰대본산 용주사 Yongjusa Temple: The Head Temple of Filial Pie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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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효찰대본산 용주사 |
|---|---|
| 영문명칭 | Yongjusa Temple: The Head Temple of Filial Piety |
| 한자 | 孝刹大本山 龍珠寺 |
| 웹사이트 | 용주사 홈페이지 |
해설문
국문
용주사의 역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때 처음 세운 갈양사(葛陽寺)로부터 시작한다. 갈양사는 청정한 도량(道場)*의 모습을 고려 시대까지 이어갔으며, 971년에는 수륙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우리나라 최초의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치렀다. 그러나 갈양사는 고려 시대의 잦은 외침으로 결국 가람(伽藍)**의 모습을 잃고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은 보경(寶鏡)스님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설법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을 수행했다. 정조대왕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의 배봉산에서 이곳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능침사찰(陵寢寺刹)***을 갈양사 터에 새로 지었다. 그것이 지금의 용주사이다.
정조대왕은 대웅보전의 낙성식 전날 밤, 자신의 꿈에 나타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능침사찰의 이름을 용주사라고 지었다. 그 후 용주사는 정조대왕의 원력(願力)****에 근거하여 효행 본찰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주사에는 용주사 동종과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대웅보전·금동향로·용주사 상량문 등 다수의 국보·보물과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또한 용주사는 전국 25교구 중 제2교구로서 현재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에 걸쳐 100여 개의 말사(末寺)*****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 도량(道場): 불교의 수행 장소
- 가람(伽藍)**: 승려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장소로 사찰을 의미함
- 능침사찰(陵寢寺刹): 왕릉의 제사와 능역 보호를 담당하는 사찰
- 원력(願力):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는 내적인 결심과 힘
- 말사(末寺):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 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 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을 의미함
영문
Yongjusa Temple: The Head Temple of Filial Piety
The history of Yongjusa Temple can be traced back to Garyangsa Temple, which was established in 854. Garyangsa Temple remained in operation into the Goryeo period (918-1392), becoming the site of Korea’s first Water and Land Ceremony, a Buddhist ritual for the universal salvation of the spirits of the deceased who inhabit the painful domains in water or on land, in 971. However, due to repeated invasions, the temple was eventually destroyed and abandoned, surviving only in historical records.
Yongjusa Temple was later founded on the site of Garyangsa Temple upon the royal decree of King Jeongjo (r. 1776-1800), the 22nd monarch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Deeply moved after hearing a lecture on Sakyamuni’s Teaching on Parental Love, King Jeongjo launched a major project to honor the spirit of his late father, Crown Prince Sado (1735-1762). He moved his father’s tomb from Baebongsan Mountain in Yangju to Hwasan Mountain in Suwon (today’s Hwaseong) and commissioned the construction of Yongjusa Temple to perform ancestral rituals and protect the royal tomb.
The name Yongjusa means “Temple of the Dragon and the Jewel.” On the night before the completion ceremony for the temple’s main worship hall, King Jeongjo dreamt of a dragon ascending to heaven while holding a wish-fulfilling jewel in its mouth, and named the temple accordingly. Based on the king’s sincere wish to practice filial piety, Yongjusa has since served as Korea’s principal temple of filial devotion.
Today, Yongjusa Temple is the head temple of the 2nd District of the Jogye Order and oversees more than 100 branch temples and hermitages throughout southern Gyeonggi-do Province, including in Suwon, Yongin, and Anyang. The temple complex is home to several cultural heritages, including Daeungbojeon Hall, a bronze bell, gilt-bronze incense burners, and printing plates of Sakyamuni’s Teaching on Parental Love.
영문 해설 내용
용주사의 역사는 854년에 세워진 갈양사로부터 시작한다. 갈양사는 고려시대까지 유지되었고, 971년에는 한국 최초의 수륙재가 거행되었다. 수륙재는 고통으로 가득 찬 온 물과 육지를 헤매는 모든 영혼들의 천도를 기리기 위해 행해지는 불교 의례이다. 그러나 갈양사는 잦은 외침으로 결국 소실되고 폐사되었으며,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었다.
갈양사 자리에 용주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재위 1776-1800)의 명에 의해서였다. 정조는 『부모은중경』에 대한 설법을 들은 뒤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1735-1762)의 넋을 기리기 위한 대대적인 국가 사업을 추진하였다. 정조는 원래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지금의 화성)으로 옮기고, 제사와 묘소 보호를 담당하는 사찰로 용주사를 세웠다.
정조는 용주사 대웅보전의 낙성식 전날 밤, 꿈에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사찰의 이름을 지었다. 그 후 용주사는 정조의 원력(願力)에 근거하여 효행 본찰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서, 현재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에 걸쳐 100여 개의 말사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용주사에는 대웅보전, 동종, 금동향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등 다수의 국가유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