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당 득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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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당 득통탑
Deuktongtap Stupa of Monk Hamheodang
함허당 득통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허당 득통탑
영문명칭 Deuktongtap Stupa of Monk Hamheodang
한자 涵虛堂 得通塔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산1-1번지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134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함허당 득통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무덤의 하나로, 부도 또는 사리탑이라고도 한다. 함허당득통탑은 조선 전기 승려인 함허당의 사리를 모셔둔 승탑이다. 이 승탑은 바닥돌부, 몸돌부, 머리 장식부 모두 팔각형으로, 조선시대 전기 팔각원당형의 양식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함허당(1376~1433)의 법명은 기화(己和), 법호는 득통(得通)이다. 21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세종의 부름을 받아 개성 대자사(大慈寺)에 머무르며 교화를 하였다. 세종 13(1431년)에 봉암사에 들어와 퇴락한 절을 고치고, 이 절에서 『금강경설의』를 지었다.

험허당의 승탑은 봉암사 외에도 경기도 가평의 현등사, 강화도의 정수사, 평안도 자모산 연봉사 등 네 곳에 세워져 있다.

영문

Deuktongtap Stupa of Monk Hamheodang

A stupa is a structure containing the remains of an eminent Buddhist monk.

This stupa contains the remains of Hamheodang (1376-1433), a Buddhist monk, who lived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Hamheodang became a monk in 1396 and spent his life traveling from temple to temple and teaching other monks. He believed that the essential principle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Daoism are the same, and therefore their teachings should coexist together harmoniously. In 1421, upon the request of King Sejong (r. 1418-1450), he went to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where he stayed for four years preaching Buddhist teachings. From 1431 until his death, he stayed at Bongamsa Temple and oversaw its reconstruction. After his death, his remains were enshrined in stupas at four temples, namely, Bongamsa Temple in Mungyeong, Hyeondeungsa Temple in Gapyeong, Jeongsusa Temple in Ganghwa, and Yeonbongsa Temple at Jamosan Mountain in Pyeongan-do. The stupa was named after his pen name, Deuktong.

The octagonal stupa consists of a three-tiered base, a body stone, a roof stone, and a decorative top. The bottom layer of the base features lotus designs, and the body stone has the name of the stupa carved on one of its sides. The decorative top is shaped to look like flower buds.

영문 해설 내용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이 승탑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승려인 함허당(1376-1433)의 유골을 모신 것이다.

함허당은 1396년에 출가하였으며,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승들을 지도하며 수도하였다. 그는 유교, 불교, 도교의 3교가 근본은 같은 것이니 서로 상생하고 조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1421년에는 세종(재위 1418-1450)의 부름을 받아 4년간 개성에 머무르며 교화를 하였다. 1431년부터 입적할 때까지 봉암사에 머무르며 사찰을 중수하였다. 입적 후에는 문경 봉암사, 가평 현등사, 강화 정수사, 평안도 자모산 연봉사 등 네 곳에 승탑이 세워졌다. 이 탑의 이름인 ‘득통’은 스님의 호이다.

승탑은 3단으로 된 기단, 몸돌,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분은 모두 팔각형이다. 기단 맨 아래층에는 연꽃을 새기고, 몸돌 한 면에는 탑의 이름을 새겼다. 꼭대기에는 팔각 받침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있다.

참고

  • 기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