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동 탐라왕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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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동 탐라왕자묘
Ancient Tombs in Hawon-dong
하원동 탐라왕자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하원동 탐라왕자묘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Hawon-dong
한자 河源洞 耽羅王子墓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21번지
지정(등록) 종목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2000년 6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시대 려말선초
수량/면적 분묘3기
웹사이트 하원동 탐라왕자묘,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성주(星主)·왕자(王子)는 탐라국시대(耽羅國時代, 서기 476~1005)의 왕족을 나타내는 작위(爵位)로서 성주는 탐라국왕(耽羅國王)을 말한다. 고·청·고계(高·淸·高·桂) 등 3인이 신라로부터 처음 작위를 받았고 고려시대에 와서는 성주와 왕자의 양자(兩者)에 대하여 조선조 태종 2년(1402년) 성주 고봉례(高鳳禮)는 좌도지관(左都知官) 왕자 문충세(文忠世)는 우도지관(右都知官)으로 관직이 개칭되었다. 하원동 탐라왕자묘는 모두 3기이다. 이곳의 왕자묘에 대한 기록은 이원조(李源祚) 제주목사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1842년) 대정현 고적조(大靜縣 古蹟條)에 ‘왕자묘는 대정현 동쪽 45리에 있고, 궁산(弓山) 양쪽 하천(河川) 사이에 3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왕자묘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1998~1999년까지 2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잘 다듬어진 석재(石材)로 4~8단의 판석(板石)과 할석(割石)으로 축조된 방정석곽묘(方形石槨墓)로 목관(木棺)을 사용하였다. 고려말 조선 초기 (13~15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당 시대의 자기편과 소옥(小玉), 혼유석(魂遊石), 석재향로, 문인석(文人石) 등이 출토되어 당시 고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제주도 묘제사(墓制史) 변천 과정 연구에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 되고 있다. 하원동 탐라왕자묘 제1·2·3분(墳)은 1910년 이후 여러 차례 도굴되었으나, 2001년도에 복원하였다. 가장 남쪽에 있는 제1호분은 3기 중 가장 잘 만들어진 분묘(墳墓)이며 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점판암(粘板岩) 판석을 받침돌로 쓰고 현무암(玄武岩) 판석을 세로로 맞춰 세워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 4.3m×동서3.0m×높이1.0m이다. 제2호분은 3기 중 가운데 있으며, 1호분과는 달리 점판암 할석을 7~8단으로 수평쌓기하여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4.3m×동서3.0m×높이1.0m이다. 제3호분은 북쪽에 있다. 3기 중 가장 먼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무암 판석을 세로로 맞춰 곽을 만들었다. 규격은 남북4.5m×동서3.1m×높이0.65m이다. 묘역 3기를 조사한 결과 내부 층위는 대부분 ①표토층 ②흑갈색부식토층 ③황갈색부식토층 ④흑갈색부식토층 ⑤황갈색점토질층 ⑥목탄층 ⑦흑갈색부식토층 ⑧황갈색점토질층 ⑨흑갈색부식토층 ⑩황갈색점토질층 ⑪목탄층 ⑫흑갈색부식토층 ⑬황갈색점토질층 ⑭목탄층으로 층위(層位)가 구성돼 있다.

영문

Ancient Tombs in Hawon-dong

These three tombs located in Hawon-dong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etween the 13th and 15th centuries for members of the ruling class living on Jejudo Island at the time.

According to local chronicles compiled in 1842 by the local magistrate Yi Won-jo (1792-1871) these tombs are mentioned as belonging to the ruling class of Tamna, an ancient state that ruled Jejudo Island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Although Tamna was absorbed into the Goryeo kingdom (918-1392) in 1105 as a separate administrative unit, the local leaders and ruling class retained their symbolic status until the beginning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tombs were robbed several times after Japanese colonial rule began in 1910. Archaeological excavations were conducted here in 1998-1999 and 2024. All three tombs are stone-lined tombs, built of carefully carved stones, with wooden coffins insid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s include earthenware fragments, small pieces of jade, a stone spirit seat, a stone incense burner, and civil official statues. These artifacts hold significant academic and historical value for the research on the changes in the Jeju area’s tomb rituals.

Tomb No. 1, located at the southernmost end, is the most elaborate of the three tombs, featuring civil official statues on either side. Its chamber was made by using a slate slab as a platform and lining the walls with upright basalt slabs. The burial mound measures 4.3 m from north to south, 3 m from east to west, and 1 m in height. Tomb No. 2, situated in the middle, has its chamber built out of crushed slate stones laid in 7-8 horizontal layers. Its mound measures 4.3 m from north to south, 3 m from east to west, and 1 m in height. Tomb No. 3, located at the northernmost end, is presumed to be the earliest of the three. With a chamber made of upright basalt slabs, the mound measures 4.5 m from north to south, 3.1 m from east to west, and 0.65 m in height.

영문 해설 내용

하원동에 있는 3기의 고분은 누구의 묘인지는 알 수 없지만, 13-15세기에 고위층의 무덤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목사를 지낸 이원조(1792-1871)가 1842년에 편찬한 제주 지역 읍지에서는 이 고분들을 삼국시대부터 제주도에 있었던 옛 나라인 탐라국 지배계층의 묘로 칭한다. 탐라국은 고려시대인 1105년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 중 하나로 편입되었으나, 탐라의 지배층인 성주와 왕자는 조선 초까지 상징적인 존재로 유지되었다.

이 고분들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 여러 차례 도굴되었고, 1998~1999년과 2024년에 발굴조사가 수행되었다. 세 고분 모두 잘 다듬어진 석재로 축조된 사각형의 돌덧널무덤이며, 목관을 사용하였다. 고분들에서는 자기 조각, 소옥(小玉), 혼유석, 석제 향로, 문인석(文人石) 등이 출토되었으며, 제주 지역의 묘제사 변천 과정 연구에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가장 남쪽에 있는 제1호분은 3기 중 가장 잘 만들어진 분묘이며 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점판암 판석을 받침돌로 쓰고 현무암 판석을 세로로 맞춰 세워 덧널을 만들었다. 크기는 남북 4.3m×동서 3m×높이 1m이다. 가운데에 있는 제2호분은 점판암 할석을 7~8단으로 수평쌓기하여 덧널을 만들었다. 크기는 남북 4.3m×동서 3m×높이 1m이다. 북쪽에 있는 제3호분은 3기 중 가장 먼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무암 판석을 세로로 맞춰 곽을 만들었으며, 크기는 남북 4.5m×동서 3.1m×높이 0.65m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