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신씨 종중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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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신씨 종중 묘역
Cemetery of the Pyeongsan Sin Clan
평산신씨 종중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평산신씨 종중 묘역
영문명칭 Cemetery of the Pyeongsan Sin Clan
한자 平山申氏 宗中 墓域
주소 인천광역시 서구 대곡로368번안길 11 (대곡동)
지정(등록) 종목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1호
지정(등록)일 2010년 4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076㎡
웹사이트 평산신씨 종중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조선 중종(中宗) 때 문신으로 호조 판서, 한성부 판윤, 우참찬을 지낸 이간공(夷簡公) 신영(申瑛, 1499~1559)과 자손들의 묘로 이루어진 평산 신씨 종중 묘역이다.

본래 대곡동 황골은 단양우씨(丹陽禹氏)들의 집성촌이었으나, 1500년대 초에 신영이 우씨 집안의 딸에게 장가를 들며 황골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곳에는 신영과 그의 부인인 단양우씨의 묘, 신영의 장인인 우석규(禹錫圭) 부부, 신영의 아들 신승서(申承緖) 부부, 신승서의 5대손인 신철(申轍) 부부의 묘가 조성되었다. 이들 무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신승서의 형 신광서(申光緖)의 무덤도 있다.

신영의 자는 윤보(潤甫)이다. 아버지는 판서로 추증(追贈)된 신세경(申世卿)이며, 어머니는 예조참판으로 추증된 박사란(朴思爛)의 딸이다. 1516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23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에 발탁되었다. 권신에게 아부하지 않아 수원 부사로 좌천되었으나,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다. 시호는 이간이다.

신영의 묘역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 신도비는 1573년에 세워졌으며 신영의 업적과 가계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신도비의 비문은 신영의 사위인 관찰사 김계휘(金繼輝)가 짓고,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이자 서예가인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썼다. 신도비와 함께 문인석과 망주석의 조각 솜씨도 뛰어나 석조미술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이 묘역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사대부 묘역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 사위에게 상속하여 여자 후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한 실증적 자료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영문

Cemetery of the Pyeongsan Sin Clan

This cemetery is home to the tombs of the civil official Sin Yeong (1499-1559) of the Pyeongsan Sin clan, his father-in-law U Seok-gyu, his son Sin Seung-seo, and his sixth-generation descendant Sin Cheol, and their respective wives. The tomb of Sin Yeong’s son Sin Gwang-seo is also located nearby. Hwanggol Village of Daegok-dong, where this cemetery is located, was once a clan village of the Danyang U clan to which Sin’s wife belonged. Sin Yeong moved to this village upon getting married.

Sin Yeong passed the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in 1516,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in 1523, and began his official career at the Office of Special Advisers. However, due to his unwillingness to please the influential political powers, Sin was demoted to the post of magistrate of Suwon. As magistrate, he became known for his benevolent governance and was revered by the locals. Later, he was promoted back to the central government where he served as minister of taxation and mayor of Hanseong (the capital district).

The stele located in front of Sin Yeong’s tomb was erected in 1573. Its inscription records Sin Yeong’s achievements and family lineage. It was composed by Sin’s son-in-law, the civil official Kim Gye-hwi (1526-1582), and calligraphed by the scholar and calligrapher Song In (1517-1584). The stele, along with the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stone pillars installed in front of the tomb, demonstrate a high level of craftsmanship.

The site is a well-preserved example of a clan cemetery that was gradually expanded over the course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평산신씨 문중의 문신 신영(1499-1559), 신영의 장인인 우석규, 신영의 아들 신승서, 신영의 6대손인 신철과 그들의 부인들의 묘가 있는 묘역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신영의 아들 신광서의 묘도 있다. 이 묘역이 위치한 대곡동 황골마을은 원래 단양우씨의 집성촌이었으나, 신영이 우씨 집안의 딸과 결혼하면서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신영은 1516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23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홍문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힘 있는 세력에 아부하지 않아 수원 부사로 좌천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다. 이후 다시 중앙 조정으로 복귀하여 호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지냈다.

신영의 묘 앞에 있는 신도비는 1573년에 세워졌다. 신도비의 비문은 신영의 업적과 가계에 대해 기록하였으며, 신영의 사위인 문신 김계휘(1526-1582)가 지었다.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이자 서예가인 송인(1517-1584)이 썼다. 신도비와 함께 묘 앞에 있는 문인석과 망주석의 조각 솜씨도 뛰어나다.

이 묘역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사대부 문중 묘역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