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홍성 장곡산성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장곡산성은 해발 255.5m의 산에 쌓은 성으로, 성 둘레는 약 1,352m이다.
이 주변은 지세가 험하고 계곡이 좁아, 군사상 요충지로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동쪽으로 무한천과 그 일대가 잘 조망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대현리 일대가 잘 파악된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오서산이 길게 이어져 있고, 북쪽으로는 학성산성(鶴城山城)과 연결되고 있어 광천~청양 방면에서의 적의 침입과 예산 방면의 북쪽에서 오는 적을 저지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산성은 동굴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산성 안에서 건물터의 주춧돌·기와 조각·토기류가 발견되었다. 또한 이 지역 주변에서도 ‘사시’, ‘사시량’, ‘사라’라 새긴 기와 조각과 문초석, 돌덧널무덤(석곽묘)에서 발견된 청동제 방울, 백제 토기류 등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장곡산성은 백제 사시량현(沙尸良縣)의 정치, 행정적 중심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지형적 조건으로 보아 백제 부흥군의 거점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차 수정
장곡산성은 해발 255.5m의 산에 돌로 쌓은 성으로,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 둘레는 약 1,352m이다.
이 주변은 지세가 험하고 계곡이 좁아 군사 요충지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산성 내에 동굴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곡산성 외에도 주변에 백제의 산성인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 등이 띠를 이루듯 이어져 있어, 당시 이 지역의 지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의 주춧돌, 기와 조각,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산성 내에서 발견된 돌덧널무덤에서는 청동방울과 백제시대의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사시(斯尸)’, ‘사시량(斯尸良)’, ‘사라(斯羅)’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 때 이 지역에 있던 사시량현(沙尸良縣)의 정치, 행정적 중심 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성으로부터 약 1km 이내에 광산 터와 쇠를 다루는 작업장 유적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무기도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장곡산성은 해발 255.5m의 산에 돌로 쌓은 성으로,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성 둘레는 약 1,352m이다. → 장곡산성은 해발 255.5m의 서남쪽 봉우리와 해발 208m의 동북쪽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은 석축성이며, 둘레는 약 1,352m이다. 처음 축조한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 3단락 조사내용을 보면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음. 건물터 및 건물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통일신라말인 9세기∼10세기경 유물임.
-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의 주춧돌, 기와 조각, 토기류가 출토되었으며 → 산성 안에서는 통일신라기의 건물터에서 주춧돌, 기와 조각, 토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 산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추정의 내용은 삭제하는 것이 좋을 듯
- 또한 산성으로부터 약 1km 이내에 광산 터와 쇠를 다루는 작업장 유적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무기도 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삭제
- 내용 보완 → 지역에서는 장곡산성을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 가운데 하나인 주류성으로 보기도 한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이 주변은 지세가 험하고 계곡이 좁아 군사 요충지로써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 백제 때 이 지역에 있던 사시량현(沙尸良縣)의 정치·행정상 중심 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2차 수정
장곡산성은 오서산(해발 791m)에서 북동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상의 남쪽 봉우리(해발 255.5m)와 북쪽 봉우리(해발 208.8m)를 연결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둘레는 약 1,352m이며, 처음 축조한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산성 주변은 지세가 험하고 계곡이 좁아 군사 요충지로써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서·북쪽에 문지가 있으며 산성 내에 동굴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곡산성 주변에 백제의 산성인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 등이 띠를 이루듯 이어져 있어, 당시 이 지역의 지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산성 안에서는 건물터 10여 개소와 주춧돌, 기와 조각,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산성 내에서 발견된 돌덧널무덤에서는 청동방울과 백제시대의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사시(斯尸)’, ‘사시량(斯尸良)’, ‘사라(斯羅)’, ‘관(官)’ 등의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 때 이 지역에 있던 사시량현(沙尸良縣)의 정치·행정상 중심 역할을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