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인제성당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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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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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인제성당은 춘천교구 소속으로 한국전쟁 이후 38선 이북 강원 서북부에 설립된 최초의 성당이다. 휴전 이후 1954년 6월 26일 본당 설립이 이루어졌는데, 전쟁 직후 인제읍 내 건물이 전무하다 시피한 상황에서 인제읍 가장 높은 장소에 지어져 수복지구였던 인제읍의 경관과 정체성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였다.
초기에는 지금의 성당 뒤편에 천막을 설치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다가, 화재로 전소되어 콘센트건물을 세워 사용하였다. 1956년 초대 신부였던 임요한 신부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건립당시, 한국전쟁 때 공산치하에서 공회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인제성당의 동쪽으로는 인제향교, 서쪽으로는 인제감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는데, 성격이 다른 종교건축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만든다.
인제성당 본당의 내부는 3층 구조으로 1층은 출입공간, 제단이 있는 예배실과 사제관이 있으며, 2층은 원형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성가대실과 준비실이 있고, 별도의 계단이 없는 3층은 종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제성당의 건물 배치를 보면 구릉지를 3단으로 깍은 대지위에. 제일 낮은 단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두 번째 단에는 성당의 중심이 되는 본당과 교육관이, 제일 높은 단에는 양로원과 수녀원이 자리하고 있다. 인제성당의 본당은 예배당과 사제관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축물로 지어졌다. 이러한 방법은 동시대 기타 성당건축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인제성당만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안내판 | 제목 | 사진 | 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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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2 | 공회당 건물로 시작한 인제성당 이야기 | 인제성당은 북한의 영향권 아래 공회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활용하였다는 건축적 특성을 가진다. 당시 공회당 건물은 한국전쟁 중에 포격으로 지붕부가 파괴되고 벽체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 벽체를 허물고 바닥구조물과 별체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한국전쟁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제성당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 |
개별 3 | 인제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 1 - 간도마 신부, 오 후베르트 신부 | 인제성당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1956년에 건립하였다. 당시 홍천 본당의 간도마 신부가 지원하여 성당 부지를 구입하고, 오 후베르또 신부가 성당의 건축설계를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들 두 신부는 강원도내 성당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간도마 신부는 홍천 본당 제5대 주임신부로 한국전쟁 중에서는 선교사, 미군의 군종신부로 봉사하였고 강릉 본당 12대 주임신부로 재직하다 과로로 운명하였다. 오 후베르토 신부는 주로 간성, 고성지역에서 사목하였는데, 현재 강원도에 남아있는 많은 성당 건축의 신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 |
개별 4 | 인제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 2 - 오 후베르트 신부와 강원도내 성당 | 오 후베르트 신부는 성당설계에 능한 신부로, 인제성당 뿐만 아니라 춘천 주교좌성당, 홍천성당 등 강원도내 문화재로 지정된 다수의 천주교 건축물의 설계에도 관여하였다. 그렇기에 인제성당은 1950년대 강원도 지역 성당의 전형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강원도 성당건축기술과 천주교 전문기술인력의 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다. |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전반적으로 문장에 연결을 자연스럽게 표현 요망
- 전소되어 콘센트건물을 세워 →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각주 등 설명이 요함
- 대지 위에. 제일 낮은 → 대지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낮은
- 교육관이, 제일 높은 단에는 → 교육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단에는
-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 기초 구조부를 그대로
-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적절하게 기술되었음
- 분야별 자문위원 2
- 초기에는 지금의 성당 뒤편에 천막을 설치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다가, 화재로 전소되어 콘센트건물 퀀셋 건물(Quonset Hut)*을 세워 사용하였다. 1956년 초대 신부였던 임요한 신부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때 공회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 퀀셋 건물(Quonset Hut): 길쭉한 반원형 간이건물. 한국전쟁 기간과 이후 일정기간 동안 미군의 막사건물로 많이 지어졌다.
- 초기에는 지금의 성당 뒤편에 천막을 설치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다가, 화재로 전소되어 콘센트건물 퀀셋 건물(Quonset Hut)*을 세워 사용하였다. 1956년 초대 신부였던 임요한 신부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때 공회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랜드마크’라는 표현이 있는데 ‘상징’이라는 정도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 ‘인제성당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1956년에 건립하였다’라는 표현은 매끄럽지 못합니다. ‘건립하였다-> 세워졌다 or 건축됐다’
- 개별 4 안내판은 정보가 부실해 보입니다. 앞의 안내문구와 겹칠 뿐 아니라 깊이있는 정보도 아닙니다. ‘강원도 지역 성당의 전형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건지, 건축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라면 그들과 관련된 정보가 다른 안내판과는 차별화 있게 들어가야 합니다.
2차 수정
인제성당은 춘천교구 소속으로 한국전쟁 이후 38선 이북 강원 서북부에 설립된 최초의 성당이다. 휴전 이후 1954년 6월 26일 본당 설립이 이루어졌는데, 전쟁 직후 인제읍 내 건물이 전무하다 시피한 상황에서 인제읍 가장 높은 장소에 지어져 수복지구였던 인제읍의 경관과 정체성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였다.
초기에는 지금의 성당 뒤편에 천막을 설치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다가, 화재로 전소되어 퀀셋 건물*을 세워 사용하였다. 1956년 초대 신부였던 임요한 신부가 미국의 원조를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건립당시, 한국전쟁 때 공산치하에서 공회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의 기초 콘크리트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인제성당의 동쪽으로는 인제향교, 서쪽으로는 인제감리교회가 자리하고 있는데, 성격이 다른 종교건축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타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만든다.
인제성당 본당의 내부는 3층 구조으로 1층은 출입공간, 제단이 있는 예배실과 사제관이 있으며, 2층은 원형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성가대실과 준비실이 있고, 별도의 계단이 없는 3층은 종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제성당의 건물 배치를 보면 구릉지를 3단으로 깍은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장 낮은 단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단에는 성당의 중심이 되는 본당과 교육관이 있고, 가장 높은 단에는 양로원과 수녀원이 있다. 인제성당의 본당은 예배당과 사제관이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축물로 지어졌다. 이러한 방법은 동시대 기타 성당건축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인제성당만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으로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퀀셋 건물(Quonset Hut): 길쭉한 반원형 간이건물. 한국전쟁 기간과 이후 일정기간 동안 미군의 막사건물로 많이 지어졌다.
안내판 | 제목 | 사진 | 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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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2 | 공회당 건물로 시작한 인제성당 이야기 | 인제성당은 북한의 영향권 아래 공회당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의 기초 구조부를 그대로 활용하였다는 건축적 특성을 가진다. 당시 공회당 건물은 한국전쟁 중에 포격으로 지붕부가 파괴되고 벽체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는데 그 벽체를 허물고 바닥구조물과 벽체를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은 한국전쟁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제성당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 |
개별 3 | 인제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 1 - 간도마 신부, 오 후베르트 신부 | 인제성당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1956년에 세워졌다. 당시 홍천 본당의 간도마 신부가 지원하여 성당 부지를 구입하고, 오 후베르또 신부가 성당의 건축설계를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들 두 신부는 강원도내 성당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간도마 신부는 홍천 본당 제5대 주임신부로 한국전쟁 중에서는 선교사, 미군의 군종신부로 봉사하였고 강릉 본당 12대 주임신부로 재직하다 과로로 운명하였다. 오 후베르토 신부는 주로 간성, 고성지역에서 사목하였는데, 현재 강원도에 남아있는 많은 성당 건축의 신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다. | |
개별 4 | 인제성당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 2 - 오 후베르트 신부와 강원도내 성당 | 오 후베르트 신부는 성당설계에 능한 신부로, 인제성당 뿐만 아니라 춘천 주교좌성당, 홍천성당 등 강원도내 문화재로 지정된 다수의 천주교 건축물의 설계에도 관여하였다. 그렇기에 인제성당은 1950년대 강원도 지역 성당의 전형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강원도 성당건축기술과 천주교 전문기술인력의 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