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죽헌고택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상해임시정부요인(上海臨時政府要人)으로 활약한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이 조선 고종(高宗) 23년(1886)년에 지은 집이나, 1890년 참봉(參奉) 죽헌(竹軒) 이현찬(李鉉贊)이 인수하여 현재 재사(齋舍)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집은 정동향으로 자리한 정면 5칸, 측면 4칸, 홑처마 3량가의 납도리집이다. 기둥의 높이를 달리하여 지붕의 높낮이를 조절한 재치가 돋보인다. 우측에 초가 방앗간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험준한 산중에서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담을 높게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이러한 예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口’자형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이 조선 고종 23년(1886)에 지은 집이다.
고종 27년(1890) 참봉 벼슬을 하던 부호(富豪) 이현찬(李鉉贊, 1851~1915)이 이 집을 인수했기 때문에 집의 이름은 이현찬의 호인 ‘죽헌(竹軒)’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재사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2017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 집은 기둥의 높이를 다르게 해 서로 연결된 지붕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특색을 더했으며, 전체적인 공간의 구성 방식이 조선 후기에 지어진 ‘ㅁ’자형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았다.
집 오른편에 있는 초가지붕 건물은 디딜방아가 있는 방앗간이며, 집 주변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을 이용해 높이 쌓은 담을 둘렀다.
- 김가진은 1886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며, 188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4년간 체류하기도 하였다. (집을 지은 직후 외국으로 파견되면서 이 집을 팔게 된 것으로 보임) -> 집을 지은 이유나, 매매가 이루어진 이유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듯
-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 봉정사를 방문하는 길에 이 집에 잠시 들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봉정사와 죽헌고택을 연결하는 길을 '퀸 엘리자베스 로드'로 명명했다.
- 2017년부터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향토문화대전의 형태(구조) 설명은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임. /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사랑채에는 툇마루를 덧달았다. 사랑채 가장 왼편에 낸 중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안채는 중앙의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둔 구조이다. (왼쪽 안방 주인 거주, 오른쪽 방 숙박공간)
1차 수정
죽헌고택은 조선 말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인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이 조선 고종 23년(1886)에 지은 집이다. 고종 27년(1890) 선비이자 부호인 이현찬(李鉉贊, 1851~1915)이 이 집을 인수하면서 이현찬의 호를 따라 집의 이름이 지어졌다.
한때 문중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2015년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쳤다. 2017년부터는 이현찬의 후손이 한옥 체험을 위한 숙박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고택은 본채와 방앗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조선 후기 민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본채 오른쪽에 있는 초가지붕 방앗간에는 디딜방아가 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하는 길에 이 집에 잠시 들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봉정사와 죽헌고택 사이의 길을 ‘퀸 엘리자베스 로드’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