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보덕사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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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보덕사는 남연군 묘로 가기 전 약 2km 지점의 오른편 산에 위치한다. 남연군 묘 주변은 가야사라는 절이 있던 곳인데, 그 중에서도 묘가 있는 자리가 이 절의 중심지이자 탑이 서 있었던 곳이다.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서 옮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워 버린 죄책감에 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즉위하자 가야사의 동쪽 산중턱에 새 절을 창건하였다. 이 절의 이름을 부처님께 속죄한다는 뜻으로 '보덕사'라고 하였다. 이 석등은 보덕사의 경내에 있는 8각 석등으로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한면 걸러 한면씩 4면에 창이 뚫려 있는데, 창 바닥은 등잔을 놓기 위해 높게 되어 있고 창이 뚫리지 않은 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히기 위해 세우는 구조물을 말한다. 그러나 사찰의 석등은 단순히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빛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불전에 등불을 공양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찰의 중심인 법당이나 탑 앞에 세운다.

보덕사 극락전 앞에 서 있는 이 석등은 원래 불을 밝히는 화사석, 1단의 받침돌, 지붕돌만 남아있었다. ****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이때 지붕돌도 새로 만들어 교체하였다. 팔각형의 화사석에는 불빛이 새어나올 수 있도록 네 면에 창을 내었고,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정교하게 새겨놓았다. 사천왕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후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가야사지에서 반출된 석등으로 알려져 있음. 해당 내용 추가 필요.
    • 석등 부재 원형 여부 추가 확인 필요(지붕돌과 받침돌 원형 여부 재고)
    • 마지막 문단에 석등의 사천왕상 의미 추가 필요 ‘석등의 불빛이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기에 사천왕상을 새겨 이를 수호하는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 석등 화사석의 사천왕상 조각은 통일신라부터 고려까지 이어지는 전통성이라는 점 명시 필요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석등은 사찰 능묘 등에 돌로 세운 구조물이다. 불교 전래 이전에는 석등을 세우지 않았으며, 불교에서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보덕사 극락전 앞에 서 있는 이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 1단의 받침돌, 지붕돌만 남아있었다. ****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팔각형의 화사석에는 불빛이 새어나올 수 있도록 네 면에 창을 내었고, 나머지 면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 사천왕을 정교하게 새겨놓았다. 보덕사는 고종 2년(1865)에 창건되었는데 석등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더 오래전에 세워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첫 단락의 내용은 삭제해도 무관할 것으로 생각됨. 부기해야 한다면 추가 설명 개념으로 아래쪽에 간략히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함.
    • 현재는 보덕사 극락전 앞에 있지만 원래는 가야사지에 있던 것이라 전함. 원 소재지에 대한 정보 추가 요함. 또한 국립부여박물관 등에 이 석등과 짝이 맞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부재가 있다고 하므로, 이에 대한 정보 추가 요함.
    • 원 부재는 화사석뿐이며, 함께 있었던 지붕돌과 받침돌은 석등부재가 아님. 지붕돌을 새로 교체한 것이 아니라,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화사석을 제외한 모든 부재를 새로 만들었음. 정확한 복원 시기의 명시가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임.
    • 사천왕에 대한 기본 의미 설명이 필요하다면 하단에 별도로 기록할 것을 권함. 이 석등의 중요성은 사천왕상이 새겨진 것이며, 석등에 사천왕이 새겨진 유례가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함. 이러한 이유가 언급되어야 화사석만 남아 있는 이 석등이 지정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음.

2차 수정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히기 위해 세우는 구조물을 말한다. 그러나 사찰의 석등은 단순히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빛인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또한 불전에 등불을 공양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찰의 중심인 법당이나 탑 앞에 세운다.

보덕사 극락전 앞에 서 있는 이 석등은 원래 인근 가야사지에 있던 것이라고 전한다. 불을 밝히는 팔각형의 화사석만 남아 있었으며, 현재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화사석을 제외한 모든 부재를 새로 만들었다.

화사석에는 불빛이 새어나올 수 있도록 네 면에 창을 내었고, 나머지 면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정교하게 새겨놓았다. 석등에 사천왕을 새겨 장식하는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