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신형호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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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신형호 고가
Sin Hyeong-ho’s House, Cheongju
청주 신형호 고가, 충청북도 문화재대관 I, 2016, 220-221쪽.
대표명칭 청주 신형호 고가
영문명칭 Sin Hyeong-ho’s House, Cheongju
한자 淸原 申鑅浩 古家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3길 9-8
지정(등록) 종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지정(등록)일 1985년 12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청주 신형호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5

이 집은 독립운동가인 신영호(1902~1947) 선생의 생가로, 충청도 양반가의 전형이라고 할 집이다.

조선말 1881년(고종 18)에 지은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ㄱ자 팔작 지붕집의 안채이다.

본래 사랑채와 곳간채, 마고 등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한말에 신정식이 살았을 때에 의병의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고 안채만이 남아 있다.

이집은 일제시대 민족 교육의 목적으로 창설된 대활단의 본거지 이기도 하였다.

2021

이 고가는 독립운동가 신형호(1902~1947)의 생가로, 고종 18년(1881)에 건축되었다. 본래는 안채와 사랑채, 곡간채 등이 있었으나, 신형호의 부친 신정식(申正植)이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훼손되었다.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5칸 측면 4칸의 ㄱ자형 건물로, 충청도 양반가의 전형이라 할 만한 건축물이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부엌과 마루가 딸린 안방과 윗방이 있으며, 왼쪽에는 부엌과 마루가 딸린 건넌방이 있다.

신형호*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령 신씨(高靈 申氏) 가문의 일원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경성중앙학교 재학생으로 있다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청주로 내려왔다. 이후 청주농업학교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체포되어 11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90년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다.


  • 신형호의 또 다른 이름은 신영호申榮浩로,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신영호로 등록되어 있다.

영문

  • Sin Hyeong-ho’s House, Cheongju

2015

This hanok is the birthplace of Sin Yeong-ho, (1902-1947), an independence activist. Built in 1881, this house shows the typical architectural style of aristocratic residences in the Chungcheong-do area.

Originally, there was a men’s quarters, as well as auxiliary structures such as a storehouse and a stable.

However, because Sin’s father provided accommodation for the Korean civilian army, these buildings were destroyed by Japanese soldiers.

Now, only the women’s quarters remains.

2021

This house, built in 1881, is the birthplace of Sin Hyeong-ho (i.e. Sin Yeong-ho, 1902-1947), an independence activis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Sin Hyeong-ho was a member of the Goryeong Sin Clan living in the Cheongju area. This clan produced many independence movement leaders. When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ook place in 1919, Sin Hyeong-ho, who had been studying in Seoul, returned to Cheongju with a copy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He was preparing an independence demonstration with Cheongju students when he was arrested and imprisoned. In 1990,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by the Korean government.

The house currently consists of only a women’s quarters, but originally had several more buildings such as a men’s quarters and a storehouse. These other buildings were destroyed by the Japanese military because Sin Hyeong-ho’s father Sin Jeong-sik (1868-?) had provided meals and accommodation to anti-Japanese civilian armies. The L-shaped wo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with a mai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right, and a furnace for underfloor heating, an underfloor-heated room, and a wooden veranda on the left. In front of the main room is a kitchen and above the furnace is an attic for storage.

영문 해설 내용

2021

이 집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신형호(신영호, 1902-1947)의 생가로 1881년에 지어졌다.

신형호는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청주 지역 고령신씨 가문의 일원이다.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청주로 돌아왔다. 청주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 집은 원래 사랑채, 곳간채 등 여러 채의 건물이 더 있었으나, 신형호의 아버지인 신정식(1868-?)이 의병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훼손되고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안방이 있고, 왼쪽에는 온돌 아궁이, 온돌방, 마루방이 있다. 안방 앞에는 부엌이 있고, 아궁이 위에는 다락이 있다.

참고자료

  • 청주신형호고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3213 -> 안채는 2칸 통칸으로 된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2칸의 안방을 들였는데 이 방에는 사분합 미닫이문을 달았고 이 방 뒷편에 다시 1칸의 좁은 툇마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방에서 앞으로 꺾이어서 3칸되는 넓은 부엌을 들였다. 또 대청의 좌측으로는 앞에 툇마루를 둔 1칸의 건넌방을 들였는데 아래는 온돌아궁이의 함실을 설치하고 위는 다락으로 꾸몄고 이어서 다시 1칸의 좁은 툇마루를 붙여 설치하였다. 안채의 공간 구성에서 좌·우 끝부분에 중앙 부분에 있는 넓은 대청공간과 구별되는 또 다른 독립된 좁은 툇마루를 만들어 이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꾸민 특징을 볼 수 있는 주택으로 주목되고 있다.
  • 2020.10.13._신형호 고가 탐방, 꽃천지 가덕,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flowergadeok/222120556456 -> 최근 사진
  • 신정식,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SA_6JOc_1885_037104 -> 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