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방정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청주 방정
Bangjeong Well, Cheongju
청주 방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주 방정
영문명칭 Bangjeong Well, Cheongju
한자 淸州 方井
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588-23번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
지정(등록)일 1990년 12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주거시설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청주 방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5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살던 마을에 있던 우물이다. 방정은 그 모양이 네모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초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러 가던 중 이곳에 주둔했을 때, 이 지역의 호족이었던 한란이 10만의 고려군에게 군량을 제공하고, 이 방정의 물로서 식수를 삼았는데 솟아나는 물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화강암의 장대석으로 된 머릿돌의 윗부분에 ‘방정(方井)’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우물의 뒤쪽의 벽은 둥글게 축대를 쌓았다. 우물 바닥에는 자갈돌을 깔았고, 앞쪽으로는 연목을 만든 흔적이 있다. 우물 근처에는 ‘방정교(方井橋)’라고 새긴 길이 153cm의 돌이 남아 있다. 이 돌로 미루어 방정 곁에는 작은 다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물 이름에서 유래하여 이곳을 ‘방정마을’이라 부른다.

2022

청주 방정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살던 마을에 있던 우물이다. 우물의 윗부분은 사각형의 화강석으로 만들었는데, 그곳에 ‘방정(方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당시에 한란이 살면서 식수와 용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한란이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사흘 동안 기도를 드리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이때 북쪽에서 장수가 나타나 창끝으로 땅을 찌르니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너무 기뻐 소리치다 깨어난 후, 꿈속에서 본 곳을 파 보니 땅속에서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에 한란은 문중 사람들과 함께 네모꼴로 큰 웅덩이를 파고 물을 가두었는데, 이후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을 네모난 우물이 있는 곳이라 하여 ‘방정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토벌하고 이곳을 지나다 10만 군사에게 이 우물의 물을 먹였는데 부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물 근처에는 ‘방정교(方井橋)’라고 새긴 길이 153cm의 돌이 남아 있는데, 이 돌로 미루어 방정 주변에 작은 다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 우물의 보호를 위해 덮개와 담장을 새로 정비하였다.

청주 방정에서 서북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머리공원이 있는데, 이는 청주 한씨의 본거지였던 마을 이름인 대촌(大村)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이다. 현재의 용암동 일대가 대머리 지역이었다고 한다.


  • 제수: 제사에 드는 여러 가지 재료

영문

  • Bangjeong Well, Cheongju

2015

This square well was used by Han Ran, his family, and other villagers in the 10th century. Han was the founder of the Cheongju Han Clan. During the waning years of Unified Silla (668–935), Han supported Wang Geon, the founder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nd provided Wang and his troops with food and shelter when they camped at the village. Wang defeated rival rebels and accepted the surrender of Silla and, thereafter, proclaimed the new kingdom of Goryeo. Han was award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of Goryeo for his actions. This well produced water sufficient for the 100,000 soldiers who were given food and shelter by Han. The headstone is inscribed with the word, bangjeong, meaning “square well.” There is another stone slab with an inscription reading “Bangjeong Bridge,” suggesting that there was once a bridge nearby. The whole village is now referred to as Bangjeong Village.

2022

Bangjeong Well, Cheongju

Bangjeong Well is said to have been used by Han Ran, the founder of the Cheongju Han Clan. The name Bangjeong, meaning “Square Well,” refers to the well’s shape. Bangjeong Village, where the well is located, is named after this well.

According to a legend, Han Ran was unable to work his land due to a severe drought, and so he prayed for rain for three days until he passed out. While unconscious, Han dreamed of a general who stuck a spear in the ground causing clear water to gush out. Suddenly awakening out of joy, Han Ran rushed to the place that he saw in his dream and began digging until water emerged. With the help of his family, Han created a square well, which remained full of water even during extreme droughts. According to another story, when King Taejo (r. 918-943)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camped here, this well provided enough water for all of his 100,000 troops.

The upper part of the well is made of rectangular granite stones and is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for the name Bangjeong (方井). Nearby, there is a 153 cm-long rectangular stone inscribed with the Chinese characters for Bangjeonggyo (方井橋), meaning “Bridge of the Square Well,” suggesting that there once was a small stone bridge in the well’s vicinity. The well’s protective cover and the enclosure wall surrounding it were newly made in 1988.

영문 해설 내용

2022

방정은 청주한씨의 시조인 한란이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정이라는 이름은 “네모난 우물”이라는 뜻이고, 우물의 모양이 네모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정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은 이 우물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한란이 사흘 동안 기도를 드리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한란의 꿈에 어느 장수가 나타나 창끝으로 땅을 찌르니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한란은 너무 기뻐 깨어났고, 이후 꿈속에서 본 곳을 실제로 파 보니 땅속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에 한란은 문중 사람들과 함께 네모꼴로 큰 우물을 팠으며, 이후 이 우물은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거나 줄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고려 태조(재위 918-943)가 이곳을 지나다 10만 군사에게 이 우물의 물을 먹였는데 부족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물의 윗부분은 사각형의 화강석으로 만들었는데, 그곳에 ‘방정(方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우물 근처에는 ‘방정교’라고 새긴 길이 153cm의 돌이 남아 있는데, 이 돌로 미루어 보아 방정 주변에는 작은 돌다리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우물의 보호를 위해 덮개와 담장을 새로 정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