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근 선생 묘 및 신도비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공근 선생 묘 및 신도비
Tomb and Stele of Jo Gong-geun
대표명칭 조공근 선생 묘 및 신도비
영문명칭 Tomb and Stele of Jo Gong-geun
한자 趙公瑾 先生 墓 ― 神道碑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도곡리 산30-8
지정(등록) 종목 양평군 향토유적 제2호



해설문

국문

소옹(梳翁) 조공근(1547~1629)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왕실과 나라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피난하였고, 이후 광해군을 모신 공로로 공신이 되었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를 자리에서 몰아내려는 논의가 있자 병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 양근(현재 양평읍 도곡리)에 머물렀다. 묘에는 부인 풍천 임씨가 함께 묻혀 있다.

신도비는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조공근 신도비는 숙종 16년(1690)에 건립되었다. 비석의 글은 조경(趙絅)이 짓고 이삼달(李三達)이 글자를 썼다. 신도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비석의 머리 부분인 용머리(螭首)의 조각이 정교하다.

영문

Tomb and Stele of Jo Gong-geun

This is the tomb and stele of Jo Gong-geun (1547-1629),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Jo’s wife, Lady Im, is also buried in this tomb.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Jo protected the spirit tablets of previous kings of the Joseon dynasty by taking them on his way to refuge. He also escorted the then crown prince, who later became King Gwanghaegun (r. 1608-1623). In recognition of his loyalty, he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13. After retirement, Jo stayed in the Yanggeun area (today’s Dogok-ri in Yangpyeong).

The stele, which records Jo's life and achievements, was erected in 1690. The epitaph was calligraphed by Yi Sam-dal (1637-1700) and composed by Jo Gyeong (1586-1669),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who is also from the same Hanyang Jo Clan as Jo Gong-geun.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 조공근(1547-1629)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에는 부인 임씨가 함께 묻혀 있다.

조공근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종묘에 모셔져 있던 조선시대 선대왕들의 신주를 모시고 피난하였다. 또한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재위 1608-1623)을 호종한 공로로, 1613년 공신이 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양근(현재 양평읍 도곡리)에 머물렀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는 1690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조공근과 같은 한양조씨 가문의 조경(1586-1669)이 지었고 글씨는 이삼달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