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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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Stele of Hwang Seom, Yeongju
대표명칭 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Hwang Seom, Yeongju
한자 榮州 息庵 黃暹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 522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81호
시대 조선시대



해설문

국문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 비석은 조선 선조 때 활약한 황섬(黃暹, 1544~1616)이 세상을 떠난 지 159년 뒤인 영조 51년(1775)에 세워졌다. 황섬의 무덤은 신도비에서 북동쪽 300여m 거리에 있다. 신도비는 비각 안에 모셔져 있는데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산(山)자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신은 높이 162㎝, 너비 89㎝, 폭 25.5㎝의 크기이며, 비문은 남태저가 짓고 두전*과 비문의 글씨는 강세황이 썼다. 비문은 해서체로 되어 있으나 아랫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거의 읽을 수가 없다.


  • 두전(頭篆) : 비석의 꼭대기의 앞부분에서부터 옆면과 뒷면에 걸쳐 전자(篆字)로 새긴 글

영문

Stele of Hwang Seom, Yeongju

This stele, erected in 1775, record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Hwang Seom (1544-161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His tomb is located about 300 m northeast of the stele.

Hwa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he escorted the royal family members to refuge and transported military provisions by water. In recognition of his efforts, he was bestowed with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After King Gwanghaegun (r. 1608-1623) ascended the throne, Hwang resigned from his post, moved to today’s Yeongju area, and built Surakdang Hall (Gyeongsang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680) where he dedicated himself to teaching students.

The stele consists of a tortoise-shaped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The body stone measures 162 cm in height, 89 cm in width, and 25.5 cm in depth.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Nam Tae-jeo (1709-1774) and calligraphed by the renowned calligrapher Kang Se-hwang (1713-1791). The bottom part of the text is illegible due to severe erosio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 황섬(1544-1616)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75년에 세워졌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황섬의 묘소가 있다.

황섬은 1570년에 과거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어가를 호종하고 군량 수운에 기여한 것을 인정 받아, 1604년 공신이 되었다. 광해군(재위 1608-1623)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사직하고 지금의 영주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수락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80호)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신도비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크기는 높이 162㎝, 너비 89㎝, 폭 25.5㎝이다. 비문은 문신 남태저(1709-1774)가 지었고, 명필로 이름난 강세황(1713-1791)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아랫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거의 읽을 수가 없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