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조영걸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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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조영걸 가옥
Jo Yeong-geol’s House, Yeongyang
대표명칭 영양 조영걸 가옥
영문명칭 Jo Yeong-geol’s House, Yeongyang
한자 英陽 趙永傑 家屋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1길 4-24 (주곡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지정(등록)일 2023년 10월 19일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영양 조영걸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영걸가옥은 한양 조씨 호은공파의 집성촌인 주곡리 주실 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마암 조진도가 1767년경 봉화에 정착하였을 때 지은 집으로, 18세기 말 조진도의 손자 조시복이 ‘마암고택’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조시복의 아들 조언강이 정침*을 고쳐 지었다. 조진도의 6세손인 조현기가 1901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3월 마을의 일가 사람들과 함께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면서 일가의 외손인 권희연에게 팔았다. 권희연은 살림이 늘어나면서 당시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하여 정침을 고치고 사랑채를 키웠으며 고방채, 대문채 등의 부속채를 세웠다. 2006년 지금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옮겨졌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다시 고쳐 지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5.5칸으로 평면이 ‘ㅁ’ 자형이며,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정침은 ‘⊓’ 자형인 안채와 ‘一’ 자형인 사랑채가 서로 다른 주열**+로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안채는 좌우에 붙어 있는 곁채를 포함하여 정면 4칸, 측면 4칸이며,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5칸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폐쇄적인 뜰집**** 형식을 갖춘 상류 주택이다. 근대에 들어 소유자가 바뀌면서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시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주실 마을의 역사와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 정침(正寢): 집 안에서 중심이 되는 집채 또는 방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주열(柱列): 기둥의 열
  • 뜰집: 안마당을 중심으로 4방향이 모두 연결된 집채로 둘러싸인 ‘口’ 자형의 집을 경북 지역에서 이르는 말

줄인 버전

조영걸가옥은 한양 조씨 호은공파의 집성촌인 주곡리 주실 마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조진도의 6세손인 조현기가 1901년경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으며 2006년 지금의 소유자에게 소유권이 옮겨지고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고쳐지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5.5칸으로 평면이 ‘ㅁ’ 자형이며, 맞배지붕**의 기와집이다. 정침은 ‘⊓’ 자형인 안채와 ‘一’ 자형인 사랑채가 서로 다른 주열**+로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안채는 좌우에 붙어 있는 곁채를 포함하여 정면 4칸, 측면 4칸이며,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5칸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폐쇄적인 뜰집**** 형식을 갖춘 상류 주택이다. 근대에 들어 소유자가 바뀌면서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시기적으로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주실 마을의 역사와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 정침(正寢): 집 안에서 중심이 되는 집채 또는 방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주열(柱列): 기둥의 열
  • 뜰집: 안마당을 중심으로 4방향이 모두 연결된 집채로 둘러싸인 ‘口’ 자형의 집을 경북 지역에서 이르는 말

영문

Jo Yeong-geol’s House, Yeongyang

This historic house located in Jusil Village, a clan village of the Hoeungong Branch of the Hanyang Jo clan, was first established circa 1767 by the scholar Jo Jin-do (1724-1788, pen name: Maam). Originally built in the neighboring county of Bonghwa,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circa 1901 by one of Jo Jin-do’s descendants, Jo Hyeon-gi. Upon Japan’s colonization of Korea (1910-1945), Jo Hyeon-gi sold the house in 1911 to raise money for several family members from the village who had fled to Manchuria to establish a bas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The house was purchased by a family relative, Gwon Hui-yeon, who renovated the main quarters, expanded the men’s quarters, and built a new storehouse and gate quarters. The house was purchased in 2006 by Jo Yeong-geol, a member of the Hanyang Jo clan, and underwent repairs in 2007 and 2008.

The house’s main quarters was designated as a Gyeongsang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in 2023. It consists of a two-wing women’s quarters and linear men’s quarters that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n interior courtyard. The building is typical of an upper-class residence in the northern Gyeongsangbuk-do area from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s the early 20th-century changes to the house’s layout and structure remain, the house illustrates the cultural, architectural, and residential history of both Jusil Village and Korea in general.

Short Version

This historic house located in Jusil Village, a clan village of the Hoeungong Branch of the Hanyang Jo clan, was first established circa 1767 by the scholar Jo Jin-do (1724-1788). Originally built in the neighboring county of Bonghwa, it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circa 1901 by one of Jo Jin-do’s descendants, Jo Hyeon-gi. The house was purchased in 2006 by the current owner, Jo Yeong-geol, and underwent repairs in 2007 and 2008.

The house’s main quarters consists of a two-wing women’s quarters and linear men’s quarters that together form a square layout with an interior courtyard. The building is typical of an upper-class residence in the northern Gyeongsangbuk-do area from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s the early 20th-century changes to the house’s layout and structure remain, the house illustrates the cultural, architectural, and residential history of both Jusil Village and Korea in general.

영문 해설 내용

한양조씨 호운공파의 집성촌인 주실마을에 자리한 이 가옥은 학자 조진도(1724-1788, 호: 마암)가 1767년 무렵에 지었다. 원래 인근의 봉화에 지어졌다가 조진도의 후손인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조현기는 이 가옥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였고, 주실마을의 한양조씨 일가 사람들은 독립운동기지를 세우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가옥을 매입한 일가의 외손 권희연은 정침을 고치고 사랑채를 키우고 고방채와 대문채를 지었다. 2006년 한양조씨 일족인 조영걸이 이 가옥을 매입하였고, 2007년과 2008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이 가옥의 정침은 2023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정침은 ‘⊓’ 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口’ 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다. 20세기 초에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한국과 주실마을의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줄인 버전

한양조씨 호운공파의 집성촌인 주실마을에 자리한 이 가옥은 학자 조진도(1724-1788)가 1767년 무렵에 지었다. 원래 인근의 봉화에 지어졌다가 조진도의 후손인 조현기가 1901년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2006년 지금의 소유자인 조영걸이 이 가옥을 매입하였고, 2007년과 2008년에 고쳐 지었다.

이 가옥의 정침은 ‘⊓’ 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口’ 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이다. 20세기 초에 집의 배치 및 평면 구조가 달라진 모습이 잘 남아 있어서 한국과 주실마을의 문화, 건축 및 주거사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