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쌍북리 요지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부여 쌍북리 요지
Kiln Site in Ssangbuk-ri, Buyeo
부여쌍북리요지.jpg
대표명칭 부여 쌍북리 요지
영문명칭 Kiln Site in Ssangbuk-ri, Buyeo
한자 扶餘 雙北里 窯址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30번지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99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토기가마
시대 백제
수량/면적 919㎡
웹사이트 "부여 쌍북리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쌍북리 요지*는 금성산의 북쪽 경사면에 만들어진 기와와 토기를 함께 굽던 백제 사비시기 가마터 유적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부여 시가지 계획도로 공사 중에 가마가 발견되어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후 가마의 천장은 큰 돌을 세워 받치고 벽쪽은 시멘트로 보강하여 보존해왔다. 2015년에 다시 발굴조사되어 이미 조사된 1호 가마터를 포함해 모두 3기의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1호 가마터 안에서는 기와와 토기 조각들이 나왔다.

백제 사비시기인 7세기 대에 운영된 가마로, 사비도성 안에서 기와와 토기를 생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요지(窯址) : 토기나 기와 등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

영문

This is a site of kilns used for the production of earthenware and roof tiles in the Baekje (18 BCE-660 CE) capital during the 6th and 7th centuries. Originally founded in Hanseong (today’s Seoul area), Baekje moved its capital to Ungjin (today’s Gongju area) in 475 and again to Sabi (today’s Buyeo area) in 538.

In 1941,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part of a kiln was found at the foot of Geumseongsan Mountain during road construction. After a brief excavation survey conducted at that time, the kiln was preserved by using a big rock for support and reinforcing the wall with cement mortar. Through another excavation survey conducted in 2015, two more kilns were found at this site. Despite only a small number of kilns having been found, the site holds historical significance in that it is a kiln site found inside the Baekje capital.

영문 해설 내용

백제가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었던 6-7세기에 도성 내에서 토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이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가, 475년에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고, 사비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도로 공사 중에 금성산의 산기슭에서 가마 1기의 일부가 발견되었다. 당시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가마의 천장은 큰 돌을 세워 받치고 벽 쪽은 시멘트로 보강하여 보존하였다. 2015년 발굴조사를 통해 2기의 가마터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가마의 수는 적지만 백제 도성 안에서 발견된 가마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