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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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속리산사실기비
Stele of the History of Songnisan Mountain, Boeun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충청북도 문화재대관 III, 2018.
대표명칭 보은 속리산사실기비
영문명칭 Stele of the History of Songnisan Mountain, Boeun
한자 報恩 俗離山事實記碑
주소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번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지정(등록)일 1989년 12월 8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보은 속리산 사실기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비는 1666년(현종 7)에 세운 것으로 비석의 규모는 높이 163cm, 너비 65cm이며 비문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㤠)이 짓고 동춘당(同春當) 송준길(宋浚吉)이 쓴 것이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의 내력(來歷)을 기록한 것으로서 속리산이 명산임과 세조가 이 곳에 행차한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특히 수정봉(水晶峰) 위에 있는 거북바위의 내력을 쓰고 있는데 내용은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다.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道士)를 불러 물으니 도사가 대답하되 동국(東國 한국) 명산에 큰 거북이의 형상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많은 당나라 재물을 동국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거북 모습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사람을 파견하여 곳곳을 찾다가 마침내 속리산 수정봉에 있는 돌거북을 발견하고 그 목을 자르고 돌거북 등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

영문

Stele of the History of Songnisan Mountain, Boeun

This stele was erected in 1666 to record the history of Songnisan Mountain and to admonish a superstition about a rock near Sujeongbong Peak of this mountain.

The text on this stele was composed by Song Si-yeol (1607-1689) and calligraphed by Song Jun-gil (1606-1672), two of the most influential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e first part of the inscription says that Songnisan Mountain has long been considered a sacred mountain and even King Sejo (r. 1455-1468) once visited here to offer prayers. It also recorded a local legend about Turtle Rock, which is said to have had a mysterious power to make China’s wealth leak into Korea. According to this text, due to this rumor, many Chinese came to this area to destroy the rock. Eventually, they broke the turtle’s neck and built a stone pagoda on it, as a means to suppress its power. In 1653, the turtle’s neck was reattached to its body on the order of the local magistrate, and the pagoda was demolished in 1665. The final part of the text strongly criticized the disturbance which had been caused by an irrational belief.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속리산의 역사를 기록하고 수정봉 위 거북바위에 대한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1666년에 세웠다.

비문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1606-1672)이 썼다.

비문 첫 부분에는 속리산이 아주 오래 전부터 명산으로 여겨졌고, 세조(재위 1455-1468)가 행차하기도 했다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거북바위에 대해서는 중국의 재물이 조선으로 빠져나가는데 그 원인이 거북바위의 기운 때문이라는 미신이 있다고 썼다. 중국인들이 와서 거북바위의 목을 자르고 그 위에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고 한다. 이후 1653년에 군수의 지시로 거북의 목을 다시 붙였고, 1665년에는 탑을 부수었다고 기록하였다.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러한 비논리적인 믿음으로 인해 벌어진 소동을 강하게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