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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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공회재이언적신도비
Stele of Yi Eon-jeok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문원공회재이언적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Yi Eon-jeok
한자 文元公 晦齋 李彦迪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산 81-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6-2호
지정(등록)일 2006년 1월 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
웹사이트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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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문원공 회재 이언적(1491~1554)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경세가(經世家)로서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주자(朱子)의 주리론(主理論)에 근본을 두면서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와의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을 통하여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 즉 기(氣)보다 이(理)를 중시하는 주리설(主理說)을 강조하였다. 이는 조선조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이학논변(理學論辨)으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주리설은 후일 퇴계(退溪) 이황(李滉)에 의해 계승·발전되어 영남학파 성리학의 주된 이론이 되었다. 이 신도비는 1586년 대학자 회재 이언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비문(碑文)은 호남(湖南)의 거유(巨儒)였던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짓고 글은 청허재 손엽(孫曄)이 썼으며, 현재 묘소 앞에 세워져 있다. 비(碑) 전체 높이는 300cm이며, 비신(碑身)의 높이는 185cm이다.

영문

Stele of Yi Eon-jeok

This stele erected in 1586 honors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Yi Eon-jeok (1491-1553),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Yi Eon-jeok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14 and served various government posts. In 1532, he was temporarily removed from office after being involved in a political dispute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In 1537, he was reinstated and served as minister of personnel, minister of rites, and minister of punishment. In 1547, he was expelled from office again during a literati purge and was exiled to Ganggye in Hamgyeongbuk-do (today’s North Korea). After this, he devoted himself to studying and teaching and also wrote important books on neo-Confucianism. His honor was posthumously reinstated in 1567. In 1610, he became one of the first five Korean sages to be commemorated at the National Confucian Shrine. His work also greatly influenced the renowned scholar Yi Hwang (1501-1570), who considered him to be his academic forefather.

A stele commemorating Yi Eon-jeok was first erected in 1577 at Oks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Gyeongju. This one was erected nine years later in front of his tomb.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body stone, and capstone. It measures 3 m in total height, with the body stone measuring 1.85 m in height. The inscription on the body stone was composed by the renowned scholar Gi Dae-seung (1527-1572).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이언적(1491-1553)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1586년에 세운 신도비이다.

이언적은 1514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1532년 정쟁에 휘말려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37년 관직에 복귀하여 이조, 예조, 형조의 판서 등을 거쳤다가, 1547년 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 지역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떠났다. 1567년 신원되었고, 1610년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다른 4명의 학자들과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다. 이언적의 학문은 저명한 유학자인 이황(1501-1570)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이황은 이언적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이언적을 기리는 신도비는 1577년 경주 옥산서원에 먼저 세워졌고, 이 신도비는 그로부터 9년 뒤 이언적의 묘소 앞에 세워졌다. 이 신도비는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 높이는 3m이며, 몸돌의 높이는 1.85m이다. 이언적을 추모하는 비문은 이름난 유학자였던 기대승(1527-1572)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