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암사
두암사 Duamsa Shr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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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두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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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Duamsa Shrine |
한자 | 斗巖祠 |
지정(등록) 종목 | 북구 향토문화유산 제1호 |
해설문
국문
두암사는 김해김씨 금녕군파의 파조인 금녕군 문경공 목경(牧卿)과 문민공 탁영 일손(馹孫, 1464-1498), 충선공 망헌 광립(光立, 1591-1665)을 배양하고 있는 사우이다.
문경공 목경은 고려 충선왕 때 등과하여 충혜왕까지 3대왕을 모신 관료로 조적의 난을 평정하여 삼중대광 금녕군에 봉해졌으며, 문민공 탁영 일손은 1498년 무오사화 때 화를 당했지만 직필의 선비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충선공 망헌 광립은 함평 태생으로 광해군 때 증광시에 등과하여 황주판관, 안주판관을 지냈으며, 이괄의 난 등 5회의 난을 평정하고 사헌부 장령을 거처 동관첨사로 북쪽 오랑케를 정벌하였다.
두암사는 인접한 장열사와 관련이 있다. 장렬사는 충선공 7대 후손인 모암 상순공이 우치동 죽방촌에 창건하여 흥무왕을 주벽으로 문민공 일손과 충선공 광립을 봉안 배양하였다. 그러나 1868년 창건한지 14년 만에 훼철되어 단소를 세워 배양하다가 1930년 경양문중 경창공이 두암동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그러다 1977년 장열사를 신축하면서 흥무왕을 단독 배양하고 옛 건물은 금녕군의 단소자리에 옮겨 지어 문경공 목경을 주벽으로 한원당 김굉필, 문헌공 일두 정여창을 추배하여 두암서원으로 현액하였다. 그 후 한원당 김굉필과 문헌공 정여창을 매안하고 두암사로 현판하여 문경공 목경을 주벽으로 문민공 일손과 충선공 광립을 배양하고 있다.
두암사는 외삼문, 서재(추모재), 내삼문(경앙문), 신실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정면에 툇간을 둔 맞배지붕 건물이며 이곳에서는 매년 음3월13일 향사한다.
두암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인물을 배향하고 있고 전통방식을 따르고 있는 신실과 내삼문, 서재 등은 건축적인 완성도가 높아 향토문화적 가치가 있다 .
영문
Duamsa Shrine
This shrine was established in **** to commemorate Kim Mok-gyeong, the founder of the Geumnyeonggun Branch of the Gimhae Kim clan, as well as two of his most esteemed descendants, namely Kim Il-son (1464-1498) and Kim Gwang-rip (1591-1665).
Kim Mok-gyeo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seon (r. 1308-1313)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fter which he served two more kings as well as various official posts in the government. He helped pacify a revolt against the king in 1339, for which he was bestowed the title Geumnyeonggun, meaning "prince of golden serenity."
Kim Il-son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486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He primarily served official posts that required an incorruptible character, which involved tasks such as inspecting higher officials or admonishing the king. In 1455, when King Sejo (r. 1455-1468) took the throne from his nephew King Danjong (r. 1452-1455), Kim Il-son’s teacher, Kim Jong-jik (1431-1492), wrote a text criticizing Sejo’s usurpation of the throne. Kim Il-son included this text in his daily records which could be later included in the official history. These events developed into what is known as the Literati Purge of 1498, and Kim Il-son was executed.
Kim Gwang-rip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r. 1608-1623),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lped pacify several revolts against the king, and made distinguished achievements in suppressing invasions in the north.
The shrine complex includes a main gate, a study, an inner gate, and a shrine. Ancestral rituals are held at the shrine yearly on the 13th day of the 3rd lunar month. The shrine is considered valuable as it honors figures from both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and has all the architectural features of a traditional shrine.
영문 해설 내용
두암사는 김해김씨 금녕군파의 파조인 김목경(금녕군), 김일손(1464-1498), 김광립(1591-1665)를 기리기 위해 ****년에 세워졌다.
김목경은 고려 충선왕(재위 1308-1313)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2명의 왕을 더 모시며 조정에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 1339년에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는 데 기여하여 금녕군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486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주로 관리를 감찰하거나 임금에게 간언하는 등 청빈함이 요구되는 관직을 두루 지냈다. 1455년 세조(재위 1455-1468)가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의 왕위를 빼앗자, 1457년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1431-1492)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글을 남겼고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史草)에 실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고 김일손은 처형되었다.
김광립은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여러 반란을 평정하고 북쪽 오랑캐를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두암사는 외삼문, 서재, 내삼문,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3일에 제사를 지낸다. 두암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 인물을 모시고 있으며 전통 사당 건축물로서의 완성도가 높아 향토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