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원지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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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원지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Wonji-ri, Gimhae
김해 원지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김해 원지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Wonji-ri, Gimhae
한자 金海 元支里 古墳群
주소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621-847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90호
지정(등록)일 2018년 5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가야
수량/면적 10,035
웹사이트 김해 원지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삼국 시대 무덤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김해 고분’으로 알려져 여러 차례 도굴을 당했다. 능선 위에 대형 무덤 13여 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3호, 4호 무덤과 3호 무덤 주변을 발굴 조사하였다.

3호 무덤은 앞트기식 돌방무덤*이고 봉분 주위를 돌로 둘러 쌓았다. 돌방은 좁은 직사각형이며 바닥에 시신을 안치하는 대(臺)가 놓여 있는데, 이는 깬돌과 강돌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출토 유물로는 유리구슬과 철기 조각이 있다. 3호 무덤 주변으로는 돌덧널무덤* 2기, 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단지, 목 짧은 항아리, 철로 만든 작은 칼, 낫 등이 있다.

4호 무덤은 낮은 봉분을 가진 널무덤으로, 3호 무덤 남동쪽에 자리한다. 여러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자라 모양 병, 목 짧은 항아리, 그릇 받침 등이 있다. 말을 탈 때 쓰는 안장과 발걸이인 등자도 확인되었다.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6세기대 금관가야 말기 지배층의 무덤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 앞트기식 돌방무덤: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돌방 옆면에 입구를 만든 무덤. 추가장이 가능하다.
  • 돌덧널무덤: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로 덧널을 만든 무덤.
  • 널무덤:무덤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직접 넣거나 나무관에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영문

Ancient Tombs in Wonji-ri, Gimhae

This ancient tomb cluster consists of 13 large burial mounds. They ar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6th century and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about the burial practices of the ruling class of Geumgwan Gaya (42-532), a state that ruled the Gimhae area at the time.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se tombs have been robbed several times. Tomb No. 3 and its surroundings, as well as Tomb No. 4, were excavated in 2018.

Tomb No. 3 consists of a rectangular stone burial chamber with an entrance. The burial mound was surrounded by stones at the base. Inside the burial chamber, there was a stone platform for the body.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include glass beads and fragments of ironware.

In the vicinity of Tomb No. 3, two stone-lined tombs and one wooden coffin tomb were also discovered. Artifacts excavated in these tombs include mounted dishes with lids, small jars, short-necked jars, small iron swords, and sickles.

Tomb No. 4, located to the southeast of Tomb No. 3, is a wooden coffin tomb with a low burial mound.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include earthenware, such as mounted dishes with lids, turtle-shaped bottles, short-necked jars, and vessel stands, as well as a horse saddle and stirrups.

영문 해설 내용

원지리 고분군은 13기의 대형 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김해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의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여러 차례 도굴을 당하였다. 이중 3호 무덤과 그 주변, 4호 무덤에 대해 2018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3호 무덤은 시신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직사각형의 돌방에 입구를 만든 형태이고, 봉분 주위를 돌로 둘러 쌓았다. 돌방 내부에는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돌로 만든 대가 놓여 있다. 출토 유물로는 유리구슬과 철기 조각이 있다.

3호 무덤 주변에서는 돌덧널무덤 2기와 널무덤 1기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단지, 목 짧은 항아리, 철로 만든 작은 칼, 낫 등이 있다.

3호 무덤 남동쪽에 있는 4호 무덤은 봉분이 낮은 널무덤이다. 이곳에서는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 자라 모양의 병, 목 짧은 항아리, 그릇 받침 등의 각종 토기류와 함께, 말 안장과 발걸이가 출토되었다.

참고자료

  • 대성동고분박물관, 원지리 고분군 출토 유물 213점 인수, 경남일보, 2021.7.11.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8639 -> 김해시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지난달 주촌면 원지리 고분군(경남도기념물 제290호)에서 출토된 유물 213점을 인수받아 총 1만 500여점을 보유하게 됐다고 8일 밝혔다. 원지리 고분군은 김해지역에 남아있는 금관가야 지배층 묘역인 대성동고분군과 양동리고분군 중 유일하게 봉토를 높게 쌓아 만든 고분이다.(재)가야문물연구원은 지난 2018년 원지리고분군 발굴을 시작해 출토된 유물을 대성동박물관 측에 전달했다. 대표적 유물로는 몸통이 평평한 ‘편병’과 ‘목인 긴 항아리’(장경호)를 비롯해 토기류 마구류 등이다. 이 유물들은 금관가야 쇠퇴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김해 원지리 가야고분서 자라모양 토기 등 유물 100여점 발굴, 서울신문, 2019.1.3.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103500098 -> 금관가야 유일의 고총고분(봉분이 있는 옛 무덤)군인 경남 ‘김해 원지리 고분군’(경남도 기념물 제290호) 4호분에서 자라모양 토기를 비롯해 가야시대 다양한 유물 100여점이 발굴됐다. 김해시는 3일 원지리 고분군 발굴조사기관인 (재)가야문물연구원이 주촌면 원지리고분군 3·4호분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성과를 4일 발굴현장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가야문물연구원은 원지리고분군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지난해 9월 12일 시작해 이달 말까지 한다. 지난해 11월 현장에서 정밀발굴조사 성과를 한차례 공개한데 이어 이번에 두번째 공개한다. 가야문물연구원에 따르면 정밀조사 결과 4호분은 가야권역 최초로 발굴된 높은 봉분은 가진 토광묘(다른 시설 없이 땅을 파서 만든 무덤)로 확인됐다. 4호분은 도굴되지 않아 고분 내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고, 무덤 안에서 자라모양 토기와 단경호, 고배(굽달린 토기), 단각고배(짧은 굽달린 토기), 안장, 등장(말을 탈때 쓰는 발걸이) 등 100여점의 다양한 토기가 출토됐다. 특히 4호분은 부장품을 넣는 부곽 무덤으로 확인돼 인접한 5호분은 시신을 넣는 주곽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효석 과장은 “주곽 무덤에는 시신과 함께 사람의 몸에 차는 칼이나 허리띠, 장신구 등 가치 있는 유물을 넣기 때문에 앞으로 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지면 귀중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가야문물연구원은 그동안 정밀발굴조사 결과 원지리 일대 고총고분군에서 9기의 고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야문물연구원은 주변에 봉분이 확인되지 않는 10여기의 작은 고분도 분포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봉분이 있는 9기 가운데 3·4호 고분(3-1·2호분, 3호분 남동쪽에 있는 작은 고분 2개 등 포함)에 대해 정밀발굴조사를 하고 아직 7기는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3호분은 남동쪽에 입구를 조성한 6세기 횡구식설실분(출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돌방무덤)으로 봉토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11.2~12.8m, 높이 3.3~4.5m이다.
  • 김해 원지리고분군, 4~6C 금관가야 실증적 자료, 프레시안, 2020.12.16. 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1617133178950 -> 이 원지리고분군의 역사적 가치는 무엇보다도 6세기 전반에 축조된 고분군으로서 이를 통해 금관가야 후기의 고분문화와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 이사는 "종래 ‘김해식 단각고배’로 불리었던 토기 자료가 확인되고 있어 김해지역 고분 문화의 지역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된다"면서 "원지리고분군의 보존관리와 조사연구의 기반 구축을 위해 국가 사적의 지정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 원지리고분군은 2018년부터 경상남도의 가야유적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지원사업이다. 이러한 원지리고분군은 일제강점기부터 큰 봉토분 1기(M3호분)가 알려져 왔지만 무덤 내부가 완전히 도굴돼 주목받지 못했다. 이에 김해시는 2017년 국비를 지원받아 M3호분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해 금관가야 멸망기에 해당하는 무덤임을 확인했다. 원지리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있기 전에는 금관가야가 멸망하는 532년까지 김해에 고총고분(거대한 봉분을 가지는 무덤)이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였지만, 조사 결과 원지리고분군이 금관가야 후기를 대표하는 고총고분군으로 확인됐다. 금관가야 후기는 금관가야 왕들의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에서 초대형 무덤이 사라지는 430년경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532년까지를 말한다. / 최근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김해 원지리고분군에 대한 학술발굴조사와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김해지역에도 6세기에 고총고분이 축조됐으며 금관가야의 지배세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 김해 원지리고분군 3호분, 금관가야 최대규모 확인, 김해시 공식블로그,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gimhae4you/221150669445 -> 현장 발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