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인왕동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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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인왕동 사지
Temple Site in Inwang-dong, Gyeongju
경주 인왕동 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인왕동 사지
영문명칭 Temple Site in Inwang-dong, Gyeongju
한자 慶州 仁旺洞 寺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41-3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533호
지정(등록)일 2016년 1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6필지 35,282㎡
웹사이트 경주 인왕동 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이 인용사(仁容寺)의 터로 추정하였다. 『삼국유사』에 인용사는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金仁問, 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였다. 이때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귀국을 기원하며 관음도량(觀音道場)을 열었으나, 효소왕 3년(694)에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미타도량(彌陀道場)으로 바꾸었다. 인용사는 신라에서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세운 최초의 사찰로서 당시의 신앙 형태를 보여준다.

2002~2011년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4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신라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로 유례가 드문 아[亞]자형 건물지를 비롯 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연지와 우물 등을 확인하였다.

영문

Temple Site in Inwang-dong, Gyeongju

This is the site of a Buddhist temple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7th century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This site was surveyed by Japanese researcher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who suggested that this was Inyongsa, a temple mentioned in the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yusa). Inyongsa was founded to pray for a blissful afterlife for Kim In-mun (629-694), the second son of King Muyeol (r. 654-661). This was the first temple founded to pray not for a Silla king or monk, but a private individual.

Although Silla had created a coalition with Tang China (618-907) to help unite the three Korean kingdoms, Tang betrayed this alliance, tried to conquer Silla, and imprisoned Kim In-mun who had gone to Tang in 671. A temple was constructed to pray for his return, but after he died in 694 on his way back to Silla, the temple's purpose was changed to praying for a blissful afterlife for him.

During a series of four excavations from 2002 to 2011, the site was found to have a layout that is typical of Buddhist temple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with a central gate, main worship hall, and lecture hall all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along with a pair of pagodas that were built in front of the main worship hall. In addition, remains of a lotus pond and a well were also foun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절의 옛 터이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조사한 일본인 학자들은 이곳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가 있던 곳이라고 추정하였다. 인용사는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졌으며, 신라에서 승려나 왕이 아닌 개인을 위해 세워진 최초의 사찰이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한 이후, 당나라는 신라를 정벌하려 하였고 671년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에서 김인문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사찰을 창건하였으나, 694년 그가 귀국하던 중에 죽자 이곳에서 그의 명복을 빌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중문지, 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연지, 우물 등이 확인되었다. 중문,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금당 앞에는 쌍탑이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