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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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국문

2018

이 건물은 고려 말 전리판서를 지낸 남휘주(南暉珠)와 공조참판 남민생(南敏生)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건립연대는 1500년대로 추정되는데, 남흥사(南興寺) 법당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이 곳의 지명을 따라 남흥재사로 이름붙였다고 한다.

이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口’자형 건물로 오른쪽 대청을 누각식으로 꾸몄다. 이 누각 부분에는 고식의 문얼굴과 설주가 있는 등 조선 전기의 건축 수법이 남아 있다.

재사의 입구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대문간에 들어서면 왼쪽에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 옆에 고방과 부엌, 안방이 있다.

2020 초고

이 건물은 남휘주(南暉珠, 1326~1372)와 남민생(南敏生, 1348~1407) 부자의 묘제를 위해 지은 재사이다. 재사는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제사 드릴 조상을 생각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남휘주의 본관은 영양으로 1354년(공민왕 3) 문과에 급제하고, 1356년 친원파 기철, 권겸 등의 역모를 토벌한 공으로 중랑장에 발탁되어 전리판서에 이르렀다. 아들 남민생은 고려 말 문음으로 무관이 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둔하였다. 태종 때 평해군사(지금의 울진군 평해읍 지역 수령)로 나가 지역을 평온하게 했다.

남흥재사는 ㅁ자형의 기와집이다. 정면 5칸·측면 5칸으로 오른쪽 정면 2칸에 2층 누마루를 올리고 ‘원모루(遠慕樓)’라고 하였다. 남흥사(南興寺) 법당을 개조한 것으로 전하며,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으나 1500년대로 추정된다. 1744년(영조 20) 중수하였다.

2020 1차 수정

이곳은 고려 말의 문신 남휘주(南暉珠, 1326~1372)와 아들 남민생(南敏生, 1348~1407)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남휘주는 1354년 과거에 급제하고 1356년 친원파 기철, 권겸 등의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아들 남민생은 고려 말 음서*로 무관이 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둔하였다.

남흥재사는 15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에는 남흥사(南興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남흥사의 법당을 개조해 재사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 음서(蔭敍):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