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황, 최우홍 부자 효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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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황, 최우홍 부자 효자 정려
Commemorative Plaques of Choe Il-hwang and Choe U-h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대표명칭 최일황, 최우홍 부자 효자 정려
영문명칭 Commemorative Plaques of Choe Il-hwang and Choe U-h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한자 崔一晃, 崔遇鴻 父子 孝子 旌閭
주소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86-2
지정번호 화성시 유형문화재 제21호



해설문

국문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한다. 최일황은 조선 순조 32년(1832), 최우홍은 조선 고종 9년(1872)에 정려를 하사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일황의 정려에는 그의 관직이 ‘가선대부 증 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으로 되어 있는데 족보의 기록에 따르면 최일황은 고종 30년(1893)에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으로 추증(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된 것으로 되어 있다. 현판이 1872년에 제작되었다면 최일황의 정려에는 추증 이전의 관직이 쓰여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판의 제작 시기는 1893년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최우홍의 정려 뒷면에는 특이하게도 고종 30년(1893) 1월부터 1872년 11월까지 화성 유수를 지낸 당대의 석학(碩學)인 신석희가 쓴 최우홍의 효행을 기리는 찬양문이 있다. 김용경이 지은 중수문(重修文)을 보면 현재의 효자각은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으나 1958년 9월에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최일황·최우홍 부자는 최수기를 파조로 하는 개령공파 후손이다. 수성(隋城) 최씨는 최영규를 시조로 700년 이상 화성에서 대대로 살아 온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이다.

효행(孝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며 인륜의 중요한 덕목으로 전통사회에서 가족을 결속시키고 사회 풍속을 순화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 역사적으로 대를 이어 효행을 실천한 부자(父子)의 정려가 매우 드물며 이 정려는 효행의 고장인 화성시의 역사를 심원하게 하는 표증이다.

영문

Commemorative Plaques of Choe Il-hwang and Choe U-hong for Their Filial Devotion

These plaques commemorate the filial devotion of Choe Il-hwang (1772-1818) and his son Choe U-hong (1794-1871).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Both Choe Il-hwang and Choe U-hong were the descendants of Gaeryeonggong Branch of the Suseong Choe clan. The Choe clan’s founder, Choe Yeong-gyu, was a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and a descendant of King Gyeongsun (r. 927-935) of the Unified Silla kingdom (668-935). He was bestowed a family name by King Chungnyeol (r. 1274-1308), after which his descendants settled in today’s Suwon and Hwaseong, Gyeonggi-do and have lived there for generations. Regarding Choe Il-hwang and Choe U-hong, little is known about them apart from that they were commemorated for their filial devotion in 1832 and 1872, respectively.

The plaques are presumed to have been made sometime after 1893. The inscription on the back of the plaque commemorating Choe U-hong was written by the civil official Sin Seok-hui (1808-1873), who served as local magistrate of Suwon from 1871 to 1872.

The current pavilion housing the plaques was built in 1958 to replace the original pavilion, which had burned down.

영문 해설 내용

최일황(1772-1818)과 그의 아들 최우홍(1794-1871)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웠다.

두 사람은 수성최씨 개령공파의 후손이다. 수성최씨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후손이자 고려의 문신인 최영규가 1302년 충렬왕(재위 1274-1308)으로부터 최씨 성을 하사받은 후, 경기도 수원과 화성 등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아왔다. 최일황과 최우홍의 생애에 대해서는 각각 1832년과 1872년에 효행을 표창하는 정려가 내려졌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정려 현판은 1893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우홍의 정려 현판 뒷면에는 1871년부터 1872년까지 수원 유수를 지낸 신석희(1808-1873)가 최우홍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지은 글이 쓰여 있다.

두 정려 현판을 보호하고 있는 현재의 정려각은 원래의 정려각이 불에 타 없어진 뒤 1958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