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 - 남성 내성 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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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내성 우물터
南城 內城 우물터
Well Site in the Inner Section of the Southern Fortress
재단법인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증평 추성산성 7차 발굴조사 약보고서』, 2017.
Goto.png 종합안내판: 증평 추성산성



해설문

국문

우물터는 북향 계곡에 인접한 내성內城의 중앙부 가장 낮은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우물의 형태는 원형으로 할석재[1]를 4~5단 둥글게 쌓아 올렸으며, 규모는 지름 100cm, 깊이 80cm 정도이다. 우물 내부에서는 토기 구연부편[2]이 출토되었는데, 내부의 숯을 방사성탄소연대[3]로 측정한 결과 4세기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성산성 석축 우물은 한성백제[4] 때 산성에서 우물이 조사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4세기 우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 석재: 성벽을 쌓을 때 쓰이는 거칠게 다듬은 돌.
  2. 구연부편: 항아리, 그릇 등의 입구 조각.
  3.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방사선을 이용해 유물· 유적의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방법.
  4. 한성백제: 백제가 위례성 (현재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기간(BC 18년~AD 475년)

영문

Well Site in the Inner Section of the Southern Fortress

This well site is located at the lowest location within the inner section of the Southern Fortress. The round well was built by piling up stones in four to five layers. It measures 1 m in diameter and 80 cm in depth. Such wells are rare among Baekje fortresses.

Pottery fragments were excavated from the well. Radiocarbon dating of charcoal on the fragments' surfaces suggests that the pottery dates back to the 4th century.

영문 해설 내용

우물터가 발견된 곳은 남성 내성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원형의 우물은 돌을 4~5단 가량 쌓아 올려서 만들었다. 규모는 지름 1m, 깊이 80cm 정도이다. 백제시대의 산성 중 우물이 발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우물 내부에서는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토기편에 묻어있던 숯을 방사성 탄소연대로 측정한 결과 4세기 것으로 확인되었다.